한 동료 선수의 투구를 바라보는 메릴 켈리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다른 수준이 물씬 느껴졌다. 이 선수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트래비스 밴와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의 심정이었다. 두 선수의 시선이 꽂힌 것은 바로 김광현(27, SK)의 불펜피칭이었다.
김광현의 불펜피칭은 SK의 플로리다 1차 캠프에서 최대 히트작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김광현이 가지고 있는 입지도 입지겠지만 그만큼 공의 위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김광현이 불펜피칭을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의 모든 업무는 자동적으로 중지될 수밖에 없었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김용희 감독, 김상진 투수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 및 인스트럭터는 김광현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며 경과를 점검했다. 뒤에서 김광현의 불펜피칭을 지켜본 두 외국인 선수 또한 “역시 구위가 좋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광현은 플로리다에서 순조롭게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김광현은 전지훈련 출국 전 “페이스를 천천히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너무 빨리 끌어올리면 여름에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는 의도적으로 페이스를 떨어뜨리는 대신 직구와 슬라이더 외의 다양한 구종을 던지며 감각을 점검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출국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로웠다.

다른 투수처럼 자체 홍백전에는 등판하지 않았지만 다섯 차례 정도 불펜피칭을 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용희 감독도 첫 불펜피칭부터 합격점을 내렸다. 김 감독은 “가볍게 던지는 듯 했는데 공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몸을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 어느 해보다 목표의식도 강해 보인다”라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김광현은 오는 12일부터 진행될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지난해 이맘때보다도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김광현이 플로리다에서 공을 던진다는 자체가 화제였다. 데뷔 이후 1차 전지훈련 때는 주로 재활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인 결과 길었던 어깨 부상의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13승을 거뒀고 국내 선수 중에서는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에이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여기에 올해는 여유까지 생겼다. 지난해는 일단 아프지 않고 구위를 되찾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몸을 조금 더 빨리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머릿속에서 부상에 대한 부담감을 지운 채 시작했다. 멀리 내다보며 시즌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구종 연마도 더 일찍 시작했다. 첫 불펜피칭 당시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고 직구와 체인지업만 던진 것이 상징적이다.
일각에서는 최고 시즌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몸 상태가 좋다. 좋은 일, 힘든 일을 거치면서 마음가짐도 한층 성숙해졌다. 책임감도 커졌고 동기부여는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 김광현의 최고 시즌은 17승7패 평균자책점 2.37을 기록했던 2010년이다. 환상적인 성적이었다. 하지만 건강하고 강해졌으며 구종까지 다양화한다면 김광현이 당시 기록을 뛰어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지난해는 맛보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