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구는 매번 강렬했다. 영화 '마더'(2009)에선 거친 얼굴을 보여줬고, 영화 '26년'(2012)처럼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그의의 대표작을 떠올려 보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가 있었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제작 제이필름)은 조금 다르다. 힘을 빼고 상황을 관망하는 그의 모습에선, 여유를 넘어선 묘한 나른함까지 느껴진다.
진구는 극중 이장희 역을 맡았다. 이장희는 '쎄시봉'의 친구인 동시에 개성 강한 그들을 한 데 묶어주는 구심점이다. 트리오 쎄시봉의 멤버로 오근태(정우)를 추천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간섭은 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친구인 민자영(한효주)에 대한 멤버들의 마음을 알면서 지켜본다. 무심한 것은 아니다. 오근태에게 자신의 자작곡을 빌려주고, 대신 수화기 너머 민자영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오근태를 위해 악보를 넘겨준다.
이처럼 '쎄시봉' 속 이장희는 리더이자 아웃사이더다. 시나리오엔 이장희에 대한 묘사가 불친절했다. 사실상 화자인 이장희가 바라본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진구가 연기하는 이장희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김현석 감독도 진구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진구는 "어려웠다"며 "이러다 설명만 해주고 사라지겠다 싶었다. 비주얼이라도 남겨보고자 콧수염을 기르고 가발를 썼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진구의 이장희는 시대의 낭만을 간직한 멋진 남자로 그려진다. 가지런히 기른 콧수염에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은 제임스 딘을 연상시킨다. 일련의 상황들에 관여하기 보다 한발 물러서 있는 그에게선 고독함도 느껴진다. 오근태, 윤형주, 조복래 중 이장희가 가장 멋있다는 말에 진구는 "오토바이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타봤다"고 껄껄 웃었다.
기타도 '쎄시봉'을 계기로 배웠다. 실제론 초보자인 그는 천재처럼 보여야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비스듬히 앉아, 혹은 누워서 기타를 연습했다. 기타 학원에서 진구를 처음 만난 정우는 누워서 기타를 치는 진구를 보고 굉장한 실력자라고 오해했다. 당시 진구는 코드를 2개 배운 상태였다. 가장 늦게 캐스팅된 터라 연습시간이 충분하진 않았다. 아쉽게도 노래를 부르는 그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극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진구는 또래 배우들 중 리더였다. 동갑내기 정우와 듬직한 조복래, 애교 많은 강하늘을 이끌었다. 진구가 자처한 일이었다. "첫 상업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정우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고, 동생들에겐 힘을 주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무심한 듯 숨겨놓은 배려가 느껴졌다. "정우와 함께 복래, 하늘이를 놀리는 재미가 상당했다"고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대다수 촬영은 합천에서 이뤄졌다. 각기 다른 펜션에서 묶었는데, 거의 매일 누군가의 방에서 2차를 했다. 회식이라기 보다 술자리가 정확한 표현이었다. 제작사 제이필름의 이우정 대표가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줬다. 음악감독이 선물해준 우쿨쿨레를 하나씩 품에 안고 수다를 떨었다. 연기, 음악, 사생활 등 주제는 다양했다. 근처 24시간 콩나물국밥집이 마지막 코스였다. 대학생들이 떠난 MT와 같은 밤의 연속이었다.

이들의 '케미'는 스크린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을 연결해주는 끈끈한 '무엇'이 있다. 극중 이장희는 넉넉한 경제사정에도 오근태의 하숙집에서 지낸다. 진구는 "그냥 친구가 좋은 거다. 나도 10대 땐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친구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돈도 빌려준다. 그걸 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중요시 여기던 그도 지난해 9월 4세 연하의 일반인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장이 됐다. 오는 6월엔 아빠가 된다. 초음파 사진이 '젤리 곰'처럼 보였다며, '젤리'라는 귀여운 태명을 붙였다. "책임감은 확실히 생긴다"면서도 "실감을 못하고 있다.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하고, 담백한 그다운 답변이었다.
자칫 밋밋한 인물로 머물 뻔한 '쎄시봉' 속 이장희는 진구를 만나 매력적인,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완성됐다. 그것이 배우로서의 내공이었지다. 동시에 진구라는 배우 자체가 지닌 인간적인 면모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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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