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사로잡는다.
김기태 KIA 감독의 훈련스타일은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전지훈련의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재미와 효율성이다. KIA 전지훈련이 4주째를 넘기면서 지겨워지는 시기인데도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그 바탕에는 김 감독과 코치진이 도입한 다양한 훈련 기법이 자리잡고 있다. 타격 훈련에 게임을 적용하기도 하고 수비훈련에서는 갑자기 포지션을 맞바꾼다. 투수들은 난데없이 '어깨 주무르기' 미션을 수행한다. 오키나와에서 KIA 선수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김기태식 훈련을 세분하게 들여다보았다.
▲100m 담장을 넘겨라

김기태 감독이 부임한 이후 KIA 타자들은 배팅케이지 밖에서 하는 사이드 타격이 많다. 김 감독은 홈런타자가 아니면서도 타격 훈련량이 필요한 타자들을 반드시 불러 1루측 덕아웃 앞에서 홈런 이벤트를 갖는다. 토스배팅으로 20개 가운데 한 개를 넘기면 선수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준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잘 넘기지 않는다. 잘 맞은 홈런성 타구도 1m 앞에서 떨어진다. 김기태 감독은 "그 1m를 더 보내기가 참 어렵다. 스윙할 때 타이밍, 스피드, 백스윙 크기 등이 모두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홈런을 치기 위해 용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습득하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내야 그물망 20개 맞히기
사흘훈련의 마지막 날이 되면 훈련 타자들은 외야로 타구를 길게 날리는 타격 훈련을 한다. 홈플레이트 뒤쪽에 일직선을 만들고 타자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한다. 그런데 표적은 외야가 아니다. 김 감독이 내야 그라운드 끝에 설치한 이동식 그물망이다. 그물망을 20개를 맞히면 자동으로 훈련이 끝난다. 20개를 맞히기가 대단히 어렵다. 빨랫줄 타구가 아니면 맞히지 못한다. 다운스윙을 통해 볼에 회전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다. 어느 새 맞히려고 노력하다보면 노란 박스에 담겨진 250개의 볼은 없어진다.
▲포지션 맞바꾸기
오전 11시께 내야 수비훈련이 시작됐다. 그런데 포수들이 얼굴이 확 달라졌다. 내야수 이범호, 황대인, 외야수 김주찬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나섰다. 김민호 코치가 도입한 포지션 바꾸기이다. 무거운 포수 장비를 걸친 채 번트타구를 처리하거나 홈송구를 받아내며 포수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험했다. 내야수들은 외야수로 변신하기도 한다. 동료의 어려움을 알아달라는 주문인데 선수들이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한다. 김민호 내야 수비 코치는 기발한 훈련방식을 도입해 선수들을 즐겁게 한다. 엎드린 상태와 누운 상태에서 테니스공을 굴리거나 던져 순발력과 민첩성 키우는 훈련을 한다. 거구 최희섭이 작은 테니스공을 피하느라 몸개그를 할때는 배꼽을 잡는다. 특히 내야 전체 수비훈련을 할 때는 직원들까지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모여 훈련을 지켜보며 응원한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좋으면 박수를 친다. 즐거우면서도 진지하다.
▲얼리워크 폐지와 자아발전
김기태 감독은 훈련 메뉴에서 얼리워크(early work) 를 없앴다. 다른 선수들보다 운동장에 일찍 나와 하는 훈련이다. 대신 투수와 타자들이 전원 그라운드에 모여 전체 미팅을 하고 워밍업, 러닝 등 전체 훈련을 한다. 선수들이 일체감을 느끼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서로 교감하면서 하루의 훈련을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감독은 선수들의 몸놀림을 보고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대신 일과시간을 마치고 자아발전 시간을 두었다. 선수들이 자신이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하는 시간이다. 기존에는 선수를 지명했으나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시키지 않고 스스로 필요해서 훈련해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포석이다.
▲배꼽잡는 미션수행
지난 5일이었다. 허영택 단장이 전지훈련지 방문을 마치고 귀국에 앞서 긴베이스볼스타디움을 찾았다. 김기태 감독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좌완투수 심동섭이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코치에게서 할당받은 일종의 미션이었다. "시원하다"는 말을 들어야 미션은 완료된다. 이런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이대진 코치와 홍우태 코치가 제안했다. 미션 수행 상대는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 투수들의 담을 키우면서도 KIA라는 팀 아래에 모든 구성원끼리 친밀감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홍길동 감독
김 감독의 동선을 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이다. 대신 반드시 오전 첫 훈련 메뉴인 워밍업과 러닝훈련시간은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함께 한다. 이후에는 타격훈련장, 서브그라운드, 투구연습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선수들과 스킨십을 즐긴다. 실전이 끝나면 전체 미팅을 갖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평가를 한다. 실전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을 좋아해 용돈을 준다. 특히 그는 유난히 선수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데 듣고 싶은 정답이나 기발한 답을 하면 선수에게는 지갑을 열어 용돈을 주기도 한다. 용의주도한 구석도 있다. 전날 야구에 관해 했던 조언의 반댓말을 일부러 한다. 선수들이 전날 감독과 이야기 했던 부분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 지 곧바로 체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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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