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내가 먹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해주는 것도 아닌데 넋놓고 보게 된다.
잘생긴 남자가 쓱싹 요리를 하고, 비싼 요리만 할 것 같던 셰프가 나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밥상을 차린다. 언젠가 가봤던 맛집을 두고 미식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예쁜 여자들이 요즘 핫플레이스를 고루 다니며 맛을 본다. 여기 틀어도, 저기 틀어도 지금 TV는 요리와 맛집이 전부다.

이같은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은 이미 여러차례 분석됐다. 외로운 현대인들이 다른 사람의 먹방을 보며 함께 식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요리하는 남자를 보며 내 옆에 무뚝뚝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남자를 잠시 잊는 효과. 맞다, 꽤 강력하다.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은 그렇게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참 슬프다. 어쩌다 우리는 먹방, 요리 '따위'에 위안을 얻게 된 걸까. 감히 음식이 주는 그 엄청난 즐거움과 요리가들의 프로 정신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TV를 틀어서 넋놓고 보는 주요 소재가 '끼니'라는 점은 슬픈 게 맞다. 끼니는 힐링을 주는 뭔가가 아닌, 누구나 기본적으로 잘 누려야 하는 '권리'가 아니었던가.
한때 우리는 꿈을, 희망을, 미래를 넋놓고 봤다. 놀랍게도 예능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런 걸 보고자 했다. 장사가 안되는 식당 주인들은 신장개업을 해서 돈방석에 앉는 꿈을 꿨다.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나와서 설레는 사랑 놀음을 하고, 성공한 유명인사들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며 여러분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뿐인가. 국민들에게 책을 권하고, 도로교통법을 지키자고 '계몽'을 하며 우리가 더 나은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2류 연예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무모한 도전을 보여주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게임을 펼쳤다.
그러다 일상은 독해졌다. 예능도 독해졌다. 어린 꿈들을 모아놓고 혹독한 서바이벌을 펼치더니 기라성 같은 가수들도 노래를 시키고는 가차없이 탈락시켰다. 이보다 더 독해질 순 없겠다 싶을 만큼 일상은 독해졌다. TV에서까지 독한 걸 보기가 어려울 만큼 독해졌을 때, 먹방과 요리가 등장했다.

그전엔 너무나 당연하던 식사 한끼가 위안이 됐다. 밥 한끼를 위해 오전 내내 준비하고, 깨끗한 상위에 차려놓은 정갈한 밥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이 사소한걸로도 힐링이 될만큼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TV에 나오는 맛집을 언젠간 가보겠다고 다짐을 하며 잠을 청하는 시대. 고작 그런 걸 다짐하는 시대. 누구도 감히 꿈과 희망을 논하지 않는 지금, 마지막 한줄기 위안거리는 겨우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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