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맘때였다. 넥센 히어로즈의 미국 애리조나주 전지훈련 캠프를 취재할 때였다. 넥센의 독특한 '자율훈련'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미국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을 취재할 때와 흡사한 모습으로 한국프로야구 다른 구단들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보였다.
그래서 ‘넥센 히어로즈의 눈에 띄는 자율훈련’이라는 테마로 기사를 쓰려고 염 감독을 취재했다. 이 때 염 감독은 “우리 팀이 색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은 결과물이 많지 않다. 괜스레 다른 구단에 폐를 끼칠 수 있다”며 자세한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아직 젊은 감독으로서 선배 감독들과 다른 훈련 스타일을 공개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5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이번 전지훈련에서 넥센의 ‘자율훈련’은 언론에 공개되고 자주 소개되고 있다. 특히 ‘지옥훈련’으로 정평이 난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대비되면서 더욱 조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염 감독이 ‘자율훈련’을 부담 없이 드러낸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염 감독은 ‘그동안 쉬쉬했던 자율훈련을 드러낸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지난 2년간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훈련을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선수들도 잘 적응하고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염경엽표 훈련법’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
염 감독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훈련을 선택하려면 감독이 두려움과 초조함을 버려야 한다. 결과를 너무 걱정한다면 이전 방식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 프로야구도 이전과는 다른 훈련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율훈련이라고 무작정 선수들이 개인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코치들이 함께 지도하고 훈련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 훈련은 메이저리그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낮훈련은 대개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에 끝난다. 국내 다른 팀들에 비해 낮 훈련시간이 짧고 12시면 팀훈련이 끝나는 메이저리그보다는 조금 더 길다. 팀훈련이 끝난 2시 이후에는 훈련이 더 필요한 선수에게는 개별 엑스트라 훈련이나 자율 훈련이 1시간 정도 계속된다. 팀훈련에 지친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가 달콤한 휴식을 가질 수 있다. 대부분 국내 다른 팀들은 오후 4시 안팎에 훈련이 끝나는 것과 비교된다.
그리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먹은 후에는 7시부터 9시 정도까지 야간 자율훈련이 실시된다. 하지만 선수단 전원이 참가하지는 않는다. 특히 주전급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말그대로 자율적으로 야간 훈련에 참가토록 배려했다. 피곤할 때는 야간훈련에 불참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물론 메이저리그는 낮12시에 팀훈련이 끝나면 자유시간으로 개인훈련이나 휴식을 취한다. 정식 야간훈련은 없다.
2000년대 중반 제리 로이스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메이저리그식으로 스프링캠프를 이끌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로이스터 감독도 낮12시까지 훈련한 후에는 선수들에게 개인 자율훈련을 갖도록 했다. 선수들은 남은 시간에 웨이트 트레이닝과 야간훈련을 자율적으로 가졌다.
넥센의 야간자율훈련은 2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베테랑 주전 선수급 15명 정도는 스스로 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갖는 자율 훈련을 취하는 반면 어린 신예 선수들은 오후 7시부터 코치들의 지도아래 야간 훈련을 실시한다.
이미 프로로서 ‘돈의 맛’을 알고 자신만의 훈련과 컨디션 조절 노하우를 갖고 있는 고참들에게는 최대한 휴식을 보장하겠다는 염 감독의 의도이다. 다만 주전에서 밀려날 수도 있으므로 고참들은 스스로를 채찍하며 기량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베테랑 선수들은 야간에 후배들과 야간 자율훈련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 훈련을 준비한다.
염 감독은 “뜨거운 날씨에서 오랜 기간 훈련을 하다보면 전지훈련 막판에 접어들면 선수들이 대부분 지친다. 자칫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면서 “하지만 아직 프로로서 기량이 발전단계에 있는 신예선수들에게는 더 많은 훈련량이 필요하다. 특히 2군 선수들에게는 기량향상을 위해선 많은 훈련량이 따라야 한다”고 설명한다. 신예 선수들과 2군 선수들은 일본 프로야구에서처럼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야 발전이 있다는 판단이다.
염 감독은 “한국야구도 이제 훈련의 패러다임을 바꿀 시점이 됐다. 모든 구단들이 많은 훈련량을 갖는 것만이 지상과제처럼 여긴다면 발전이 없다. 때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른 리그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리만의 훈련 방식을 정립할 시기”라며 ‘한국형 스프링 캠프 훈련’의 공식을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넥센은 훈련 막바지인 점을 고려해 14일과 15일 이틀간 휴식일을 갖는다. 전훈 중 이틀연속 휴일은 파격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시범경기를 하루도 쉬지 않고 치르는 가운데 막바지에 하루 선수단 전체 휴식을 취하는 것과 흡사하다.
지난 스토브리그서 홍역을 치르고 ‘이종운호’로 새출발한 롯데 자이언츠도 낮시간대 훈련을 대폭 줄이며 넥센 캠프와 비슷하게 훈련을 진행했다. 롯데도 오후 2시 정도면 팀훈련을 마치고 이후에는 개인 자율훈련을 가졌다. 이미 로이스터 감독 때의 자율훈련을 경험한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 무리 없이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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