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역사가 스포? 그런데 말입니다 [첫방①]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2.15 07: 22

역사라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그런데 말이다. 결말을 다 알아도 재밌는 또 하나의 정치 사극이 탄생했다. KBS 1TV 대하 드라마 ‘징비록’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는 답답한 정치판을 고스란히 담으며 흥미진진한 정통 사극의 묘미를 살렸다.
지난 14일 첫 방송된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국가 위기관리와 실리 위주의 국정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류성룡(김상중 분)과 왕권에 대한 집착으로 눈이 멀어 개혁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선조(김태우 분)의 갈등을 펼쳤다.
전운을 감지한 류성룡의 직언에도 당리당쟁에 몰두하는 대신들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자리를 늘 위태롭게 여겼던 선조는 류성룡을 비롯한 반대세력들의 이야기를 반역으로만 받아들였다. 피해는 민초들이 입었다. 해적을 가장한 일본 군대의 침탈에 백성들은 죽음을 맞았다. 국론은 분열돼, 전쟁을 대비할 수 없었다. 불과 60분 동안 담긴 이 많은 이야기들, 어디서 본 것 같지 아니한가. 휘몰아치는 갈등 구조가 어렵고 어수선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이미 임진왜란 발발이라는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일 터다. 이 드라마는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하는 단초가 된다는 것을 곱씹어보는 맛이 있다.

답답한 정쟁은 지금의 현실 정치를 보는 듯 했다. 눈앞의 이익만 쫓는 세력 간의 다툼은 지금의 거악의 폐해를 연상하게 했다. 분명히 역사를 다루는데, 현실과 겹쳐지는 이야기, 정통 사극의 물고 뜯는 권력 다툼이 흥미로운 이유다. 흘러간 역사가 남긴 ‘피의 교훈’은 우리의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는 드라마인데 드라마 같지 않아 자꾸 보게 되는 마력의 이유다. 이날 ‘징비록’은 지난 해 정통 사극 부활을 알렸던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로 무거운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만들었다. 정통 사극이 자칫 너무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속도감 있는 전개로 젊은 세대들의 취향도 저격했다.
선조를 연기한 김태우의 불안이 가득한 선조를 연기하며 오락가락하는 감정선, 김상중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다만 일부 배우들이 ‘정도전’에 출연했던 터라 아직까지는 ‘정도전’에서 연기했던 캐릭터의 잔상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 보인다.
‘징비록’은 첫 방송에서 높은 완성도와 재밌는 이야기로 안방극장에 무사 안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열풍으로 이어졌던 ‘정도전’의 아성에 도전하는 일. ‘징비록’ 역시 ‘정도전’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터다. 조선 권력의 양축간의 첨예한 갈등, 그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왕 선조의 불안한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조선이라는 국가를 위기로 몰고갈지도 시청자들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명백한 역사를 앞으로 극적이면서도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다루느냐가 드라마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징비록’은 '다모', '주몽', '계백'을 집필한 정형수 작가가 집필을, '전우'의 김상휘 PD가 연출을 맡았다. 첫 방송은 류성룡이 역모를 꾀한 주동자와 친밀하다는 모함을 당하며 위기에 놓이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jmpyo@osen.co.kr
‘징비록’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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