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서도 ‘국제시장’ 안 보면 대화 못 끼어요” [김범석이 간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2.15 09: 37

 “이민 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잖아요. ‘국제시장’이 이곳 한인들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LA 서쪽 윌셔 웨스턴가에 위치한 LA CGV에서 만난 함영우씨는 아내와 함께 ‘국제시장’을 보기 위해 1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 한인 타운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그는 20년 전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을 찾은 50대 가장. 이날 ‘국제시장’을 보려고 잠깐 가게를 비웠고, 한 시간 거리인 얼바인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씨는 “이 영화가 고국에서도 크게 히트했다고 하는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 보면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라 좌석은 여유가 있었지만 영화 시작 전 3분의 1 가량이 메워졌다. 함씨 같은 가족 동반 관객도 있었지만, 혼자 온 50~60대 손님도 눈에 띄었다. 극장 매표직원은 “주말과 관람료를 6달러만 받는 프로모션 데이인 화요일에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국제시장은 꾸준히 남녀노소 관객이 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3개관을 갖춘 이 극장에선 ‘국제시장’ 말고도 ‘강남 1970’과 ‘오늘의 연애’가 상영되고 있었다.
두 시간 후 영화를 보고 나온 몇몇 한인들에게 관람평과 소감을 물었다. 한 눈에 봐도 눈가가 촉촉해진 한 60대 남성은 “주인공 덕수가 미국에 살던 여동생 막순을 만나는 장면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푹 빠져봤다. 재밌고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음식점을 한다는 50대 한인 여성은 “지인들과 종종 오로라 찜질방에 모여 수다를 떠는데 국제시장을 안 보니까 도저히 대화에 낄 수가 없더라”며 웃은 뒤 “이민자로서 파독 광부와 베트남 참전 등 고된 타향살이를 하는 황정민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돼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미국에 와 인종 차별을 겪고, 희망이 안 보여 거의 매일 베개를 적셔야 했던 이민 초창기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국제시장’은 이곳 LA 뿐 아니라 뉴욕 과 시카고, 캐나다 밴쿠버 등 한인들이 사는 곳에서 꼭 봐야 할 영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의 삶과 영화 속 덕수 부부의 인생이 큰 궤적에서 보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가 한인들 사이에서 ‘그래도 저 때에 비하면 우리가 겪는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작은 위로이자 처방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매매업을 한다는 김기수씨는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아직 여긴 극심한 불경기라 상인들 모두 버틴다는 각오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면서 “자칫 멕시칸들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드는데 모처럼 따뜻한 힐링 영화를 본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이곳 맥도날드에선 홀에 놓아두던 냅킨까지 직원들이 직접 관리할 만큼 모든 기업이 비용 감축에 목을 매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LA를 떠나기 위해 공항까지 이용한 한인 택시 기사의 넋두리도 귓전을 때렸다. “그래도 여기서 평일에 국제시장 보는 분들은 팔자가 좋은 분들이세요. 우리 같이 뭐 하나 크게 말아먹고 재기를 벼르는 사람들은 1분 1초가 아깝고 여유가 없어서 영화 볼 엄두조차 못 내거든요. 뭐 듣자하니 황정민이 연기는 죽인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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