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내우외환에 빠진 우리카드가 중요한 시즌 막판에 이르고 있다. 처지는 이해가 가지만 마냥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얼마나 힘을 내느냐에 따라 미래의 밝기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카드는 15일 홈구장인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LIG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1세트에서는 분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진 모습을 드러낸 끝에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특히 3세트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이로써 우리카드는 올 시즌 최다인 12연패 늪에 빠지면서 시즌 27번째 패배를 당했다. 팬들의 응원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었다.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추락이다. 우리카드는 지난 시즌 승점 43점을 따며 4위를 기록했다. 30경기에서 15번을 이겨 5할 승률을 맞췄다. 핵심 전력인 신영석 박상하가 군에 입대하며 전력이 처지기는 했으나 중위권에서 복병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전히 좋은 국내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실패했고 국내 선수들도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며 장기 침체에 빠져 들었다.

이날 패배로 6위 LIG손해보험(승점 27점)과의 승점차가 16점으로 벌어진 우리카드다. 남은 7경기에서 모두 승점을 딴다고 해도 LIG손해보험이 2경기만 이기면 자동적으로 최하위가 확정된다. ‘설마’했던 불명예도 이제 면피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역대 최소승, 역대 최다패다. 역대 최소승은 2006-2007시즌의 상무로 2승, 역대 최대패는 2009-2010시즌의 상무로 33패다. 우리카드는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상무는 아마추어 팀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경기를 잘 하고도 결정력 부족으로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 선수만 바뀌면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아니다. 전체적인 몸놀림, 분위기가 모두 처져 있다. 흥이 나지 않는다. 계속된 연패에 조바심도 보인다. 강만수 감독의 사퇴라는 충격요법까지 투입했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마냥 선수단만 탓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카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우리캐피탈로 출범한 우리카드는 그 후 팀 매각, 한국배구연맹(KOVO) 관리구단 등을 거치며 만신창이가 됐다. 선수들은 항상 불안했던 자신들의 입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KOVO가 많은 예산을 들여 신경을 쓰긴 했지만 타 팀에 비해서는 훈련 시설이나 몸 관리 시설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포인 최홍석의 경우에는 관리 타이밍을 놓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구세주인줄 알았던 우리카드는 올 시즌까지만 배구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여건이다.
말 그대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여건에서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바닥이다. 인수 업체라도 나타나면 힘이 날 텐데 아직은 확정된 것이 없다. 우리카드, KOVO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나 경기 불황에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배구단을 운영하겠다는 기업을 찾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시한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할 맛이 나겠는가. 선수들만 탓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그래서 선수들이 더 힘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시점에서 배구단은 수익을 낼 수 없다. 대개 기업의 홍보수단과 임직원들의 단합용으로 활용된다. 이런 현실에서 연패에 빠진 최하위 팀은 당연히 매력이 떨어진다. 냉정하게 홍보가치는 크지 않고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우리카드가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인수 작업도 수월해진다.
KOVO에나 우리카드에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인수 기업이 나타나 현재 인원을 100% 승계하는 것이다. 만약 공중분해 절차를 거친다면 구단 등록 인원상 우리카드 선수 중의 상당수는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구단의 가장 큰 자산은 선수들이다. 인수가치가 있음을 보여줘야 할 구성원들도 선수들이다. 성적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의 절체절명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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