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끼리 왜 이래'가 신파가 되지 않으면서도 큰 울림이 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역시 유동근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KBS '가족끼리 왜 이래'는 소시민의 대표 아버지 순봉(유동근)이 자식들의 호구로 살다가 '불효소송'을 감행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는 이기적으로만 살아가는 자식들을 개조하기 위해 소송을 감행하지만 그 과정에서 순봉은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울러 자식들도 이버지의 병을 알고나서야 자신들을 개조시키기 시작한다.
방송 초반 유동근이 소시민의 대표주자이자 보통의 아버지 순봉을 연기한다고 했을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기라면 달인이 됐을 유동근이지만, 그간 보여준 연기들이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가 많았고, 우리 머리 속에도 사극에서 호통을 치는 그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돼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관록은 숨길 수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온 '순둥이 아버지' 순금을 그는 대체 배우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해 냈다. 강재(윤박)에게 달봉(박형식)에게 강심(김현주)에게 쩔쩔 매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그가 그런 연기를 해왔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드라마에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주말극, 일일극이 그렇듯 으례 신파로 흐르겠거니 했다. 하지만 순봉은, 아니 유동근은 죽음을 아주 담담히 바라봤다. 시한부 인생이라고 해서 슬픔에 빠져 살지도 않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의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 어제 열심히 살았던 삶을, 오늘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갈 뿐이었다. 단지 그가 했던 일이 있다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고자 했고, 자신이 자식들과 하고 싶었던 이벤트를 실행에 옮겼을 뿐이었다.
'가족끼리 왜 이래'가 신파가 되지 않으면서도, 또한 마냥 가볍기만 한 드라마가 되지 않았던 것은, 대사 하나에도 울림을 담아낼 수 있는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지막도 순봉다웠다. 소박했고, 가족과 함께였고, 오열은 아닌 먹먹함. 가족노래자랑에서 순봉은 독창을 하며 가족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 박수는 그 동안 순봉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가족들의 칭찬 박수였다. 그렇게 박수를 받고 순봉은 아주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자식들의 인생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도 계속됐다. 임신, 결혼, 취직, 그렇게 인생은 흘렀다. 그렇게 유동근은 순봉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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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왜 이래'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