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꽃피는 피지컬 혁명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5.02.16 08: 26

“빨리, 더 빨리!”
광주FC가 겨우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14일 일본 구텐바시의 한 훈련장. 가벼운 근력 단련부터 시작된 훈련은 어느덧 악명 높은 셔틀런 훈련까지 이어졌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의 어색한 한국말에 선수들은 악을 쓰며 달리고 또 달렸다. 입가에 단내가 절로 나는 순간 “피니시”라는 외침이 울려퍼지자 선수들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브라질 출신인 광주 길레미 혼돈 피지컬 코치(33)는 “이게 피지컬 코치 업무의 전부는 아니”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공개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활짝 웃었다.
▲ 피지컬 트레이너? 코치!

한국에서 피지컬 코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2002 한·일월드컵부터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데려온 레이몬드 베르하이엔 코치가 한국 축구의 체력을 증진시킨 ‘파워프로그램’을 전하면서 그 필요성을 입증했다. 종전에도 일부 팀엔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가 있었지만 그저 경기 전 몸을 풀어주는 것을 돕는 수준이었다. 직함도 피지컬 코치가 아닌 피지컬 트레이너였다.
그러나 피지컬 코치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력이 알려지면서 프로 구단까지 하나 둘씩 채용에 나섰다. 요즘엔 브라질이 대세로 떠올랐다. 광주도 브라질 출신 피지컬 코치를 고용한 팀 중의 하나다. 길레미 코치는 “혹시 오늘 훈련을 보고 내가 워밍업을 시켜주는 사람이거나, 체력 운동을 시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라며 “선수들이 언제나 완벽한 몸 상태가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조율하는 마법사라고 생각해주면 적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통역 서주항씨는 “브라질이나 유럽에서 잘 살펴보면 감독 옆자리는 항상 피지컬 코치의 몫이다. 그만큼 피지컬 코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길레미 코치가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것은 선수들이 깊은 잠에 빠진 밤이다. 이틀 전인 지난 12일 일본 류츠게자이대학과의 연습경기에서 선수들이 위성항법장치(GPS)를 달고 뛰면서 얻은 데이터를 유의미한 자료로 바꾸는 일을 반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나 보던 자료들이다.
선수들의 관리도 잊지 않는다. 1주일마다 선수들의 체중은 물론, 체지방과 근육량을 꼼꼼이 체크한다. 경기 전후 선수들의 서전트 점프 높이를 통해 파워와 회복 속도까지 기록한다. 길레임 코치는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체지방은 10.5%보다 낮아야 하고, 근육량은 72%가 넘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선수들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날 따라와준다면 최소한 K리그 12개 팀에서 광주가 피지컬에선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남기일 광주 감독(40)은 “예전엔 겉으로 경기를 잘 뛴다고만 생각했던 또 다른 선수가 실제로는 조깅하는 수준으로만 뛰고 있었다”며 “우리의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숨겨진 2%가 바로 피지컬 코치의 역할에 있었다”고 만족했다.
▲ 선수 관리가 전부?…성장도 이끈다
피지컬 코치의 역할은 선수 관리로 끝나지 않는다. 통계를 통해 선수의 경기력과 장·단점을 파악해 성장까지 유도한다. 길레미 코치는 “선수들의 능력을 100%까지 끌어내려면 몸 상태를 알아야 하고, 그 몸 상태를 알게되니 선수의 성장을 이끌어낼 방법까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가 최근 새롭게 도입한 GPS 장비는 그 시작점이다. 또 다른 광주 관계자는 “이 장비들은 모두 길레미 코치가 개인적으로 가져온 것”이라며 “GPS칩 하나에 700달러(약 77만원), 이걸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1만 달러(약 1100만원)”라고 귀띔했다.
아쉬운 것은 장비 부족으로 그 효과가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피지컬 트레이너가 선수를 키우려면 GPS 장비로는 부족하다. 길레미 코치는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된다”며 “최소한 경기를 뛴 선수의 혈액을 채취해 1분 내로 분석할 수 있는 혈액분석기와 선수의 근육피로도를 체크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는 필요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한 대당 2000~3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장비들이다. 길레미 코치는 “브라질에선 1부리그 팀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이 장비들이 있으면 선수의 젖산 분포도와 근육 피로도, 체력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래야 선수를 계속 운동을 시킬 것인지 휴식을 줄 것인지 알 수가 있다”고 강조하며 “특히 적외선 카메라는 선수의 근육 부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이 사진을 보면 빨갛게 부어오른 부위가 다. 그 부윈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럴 경우 근육 부상은 최대한 막을 수 있다. 근육 부위를 다친 선수가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투자할 만한 가치기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길레미 코치는 브라질 축구에서 매년 네이마르(23·바르셀로나) 같은 선수가 배출되는 것도 탁월한 피지컬 관리에 있다고 설명한다. 선수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으니 뛰어난 선수가 배출된다는 것이다. 길레미 코치는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게 이런 부분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 것”이라며 “브라질에선 피지컬 부분에 아낌없이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1부리그에서 뛰는 팀이라면 아까 내가 언급한 것은 기본일 뿐만 아니라 16세부터 프로와 똑같이 관리된다. 피지컬 코치만 각 팀마다 12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선수들도 똑같은 관리를 받는다면 그 뛰어난 재능을 잘 살려낼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길레미 코치는 한국에선 같은 지역팀인 전북 현대 정도가 브라질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춘 팀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에 못잖은 클럽하우스, 호텔급 숙소와 최상의 훈련장, 여기에 외부 병원을 가지 않아도 선수의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의무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했다. 길레미 코치는 “광주도 아니 한국 축구 전체도 이런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부러움을 내비쳤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말미에 “이런 설비를 다 갖추면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그러자 “당연히 바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선수들이 커갈 것이고, 우승게도 가까워질 것”이라는 현답이 나왔다. 한국 축구 전체로 판을 키운다면 한·월드컵 신화의 재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광주에서 꽃피고 있는 피지컬 혁명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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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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