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연희는 천생 여자였다. 가늘고 하얀 팔을 들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거나 작은 목소리의 조곤조곤한 말씨로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타고난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동안 작품에서 보이는 이연희 역시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감독 김석윤, 제작 청년필름, 조선명탐정2)은 사뭇 달랐다.
'조선명탐정2'에서 그가 맡은 역은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의 수사에 혼선을 주는 미스터리한 여인 히사코다. 잘 나가는 게이샤로 보이지만, 정체가 모호하다. 모든 것은 후반부 밝혀진다. 그때까지 이연희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김민의 행동을 지켜본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전통적인 조선시대 여인과는 조금 다르다. 남장을 하고 조사에 나서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가녀린 모습 뒤에 감춰진 강인함이나 화려해 보이는 외양에 숨겨진 소탈함. 그것은 히사코와 이연희의 공통점이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계절 스포츠와 헬스, 요가 등을 즐겼고, 연예인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 같지만 일반인 친구가 더 많은 그였다. 이연희는 "액션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고, "연예인 친구들은 워낙 바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다양성 영화에 대한 진한 사랑도 의외였다. 틈날 때마다 극장을 찾는다는 그는 영화 이야기에 말하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혼자 갈 때도 많다며 최근 본 영화들을 나열했다. "정말 좋지 않냐"고 의견을 되묻기도 하고 '마미'를 연출한 자비에 돌란을 언급하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웃었다. "출연작으로 칸이나 베니스영화제를 가보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수줍게 덧붙였다.
연기에 대한 고민도 영화에 대한 애정 못지않았다. 이제 '청순'이 지겹겠다는 말에 "벗어나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캐릭터가 너무 바뀌지 않는 선이 좋겠다"고 신중하게 덧붙였다. 최근 가장 욕심났던 캐릭터를 물어보니 단박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 속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라고 답했다. "그런 캐릭터라면 욕심이 충분히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빛나는 장르는 사극이었다. 데뷔작이 KBS 2TV '해신'(2004)이었고, 그를 재발견해준 작품이 MBC '구가의 서'(2013)였다. '조선명탐정2' 역시 사극이었다. 그만큼 20대 여배우 중 가장 한복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였다.
"사극엔 중후함이 있잖아요. 보는 분들도 역사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배우로서 촬영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사극이에요."
차기작 MBC 새 월화드라마 '화정'도 사극이다.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 정명공주의 삶을 다룬 드라마다. 이를 위해 이연희는 관련 사료와 책 등을 찾아보며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오는 4월부터 방영되는 50부작 드라마로, 장장 6개월을 끌고 가야 한다.

"아직까지 큰 부담은 없어요. 주어진 인물을 보는 분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에겐 '조선명탐정2'의 기분 좋은 흥행세를 다음 작품으로 이어갈 일만 남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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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