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네티즌 모두가 작가이자 평론가일 수 있는 시대. 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도무지 양립이 불가능해져버린 시대. 평론가의 호시절은 완전히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특히 가장 '소프트'한 영역인 문화에서, 그것도 일반 대중이 가장 열심히 소비하는 영화를 평론하는 영화평론가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미 유명세를 획득한 평론가들도 어떠한 '의견'을 냈다가 뜨거운 논쟁에 휘말려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
최근에는 방송인 겸 컬럼니스트 김태훈이 채널CGV 아카데미 중계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다. 앞서 한 잡지에 기고한 페미니스트 관련 컬럼이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기 때문.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밝히는 게 직업인 작가가 반대 의견에 직면했다고 아카데미 해설 같은 자신의 전문 분야의 일까지 잃어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었다. 그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컬럼에서,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IS로 건너간 김군의 사례를 언급하며 제2, 제3의 김군이 계속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김군이 페미니스트를 싫어했다 해도, 이게 IS를 택하는 모든 이유가 됐을지는 의문. 이는 비약이 심하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컬럼이 도입부에서 좀 '쎈' 소재를 끌어들이길 좋아한다는 점에서, 또 너무나 비약적인 컬럼 제목은 다른 편집자가 뽑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김태훈이 억울한 면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본론도 그리 좋진 않았다. 그는 시스템에 대항할 생각은 안하고, 남성들을 끌어내려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을 '무뇌아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시스템에 대항하는 '바른' 페미니스트와 남성을 위협하는 '나쁜' 페미니스트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를 '무뇌'에 가깝게 보이도록 했다. 또 시스템의 열렬한 수호자가 주로 남성이라는 점도 은근슬쩍 무시해버렸다(물론 여성도 있다). 그래서 '지금 페미니스트는 왜 미움받는가, 진짜 페미니즘은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를 건설적으로 논할 수 있었던 이 글은 페미니스트와 IS가 동급으로 묶이는 처참한 결론만 남게 됐다.
그러나 잘 못 쓴 글은 있어도, 쓰지 말아야 할 글은 없지 않을까. 틀린 의견에는 반대 의견을 열심히 내서 토론으로 끌고 가면 그만이다. 다른 (혹은 틀린) 의견을 내는 것도 평론가, 컬럼니스트의 일이라고 볼 때, 아카데미 중계 뿐만 아니라 그의 방송활동 전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나와 다른(혹은 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을 TV에서 말살시키겠다는 생각은, IS와 페미니스트를 동급으로 놓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앞서 허지웅은 '국제시장'과 관련해 적지 않은 맘고생을 해야 했다. 그는 이 영화가 예고편을 통해 밀던 '이 고생을 우리 자식 세대가 아니라, 우리가 해서 다행'이라는 취지의 대사를 비판하면서 '토 나온다'는 표현을 써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말은 보도에 보도를 거치면서 '영화가 토나온다'고 말한 것처럼 비약되는가 하면, 우파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표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극단적인 좌우 대립의 한 예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맥락을 살펴보면 달리 볼 수 있기도 하다. 최근 '우리도 고생했으니 너희 청춘도 아픈 게 당연한 거'라는 어른들의 논리에 피로감이 상당한 상태에서, 영화 속 대사는 자극적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었다. '너희 고생은 우리 고생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해석될 경우, 허지웅의 표현은 일부이긴 해도 분명 젊은이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반응이기도 하다.
물론 막상 영화가 개봉되고 나니, 아버지 세대를 눈물겹게 그려내고 이를 전세대에 공감시키는데 성공시켰다는 평가가 두드러지면서 머쓱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평론가, 컬럼니스트는 정답을 제시하는 직업이 아니라(물론 '정답'을 내면 더 좋겠지만), 다른 의견을 내놓고 그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경직된 분위기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영화평론가의 비평보다 포털사이트 별점을 더 믿는 시대가 된지는 오래됐지만, 이제 의견까지 말하지 말라는 분위기로 나아가는 점은 또 하나의 문화 영역을 죽이는 꼴은 아닌 것인지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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