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달라붙었나. 임성한 작가의 뿌리 깊은 철학인 운명론과 내세론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임성한 작가의 요리 집착이 ‘압구정백야’에도 이어지고 있다. 친 어머니에 대한 복수의 방법은 역시나 요리로 타박하는 일이었다.
지난 17일 방송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백야’ 89회는 남편 조나단(김민수 분)의 죽음으로 인해 한동안 침울했던 백야(박하나 분)가 원기를 회복하고 친어머니이자 나단의 피가 섞이지 않은 어머니 서은하(이보희 분)를 괴롭히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명분은 복수였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백야가 참 얄밉게 굴었다. 일단 임성한 작가 특유의 나이도 어린데 어른을 가르치는 듯한 되바라지는 성격이 또 다시 드러났기 때문. 예의는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것마냥 고압적인 자세로 은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백야는 은하가 음식을 만들 때 조미료를 쓴다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또한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은하에게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거나 노인이 된다더라”라고 비아냥거렸다. 은하의 속을 제대로 뒤집는 백야의 복수는 시작이었다.

백야는 은하의 남편 조장훈(한진희 분) 앞에서 은하가 조미료를 사용해 음식을 한다고 일렀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장훈이 며느리의 말을 들어 은하에게 음식 타박을 하는 것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당연한 수순. ‘여자는 자고로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참 지겹지만, 임성한 작가가 매 작품마다 꿋꿋하게 지켜오는 일방통행식 원칙(?)이다. 결국 은하는 장훈과 요리를 두고 싸움을 벌이게 됐다. 끈끈했던 부부는 백야의 '조미료를 사용한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는 철학을 가장한 이간질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야가 복수의 방법으로 은하와 남편 사이를 갈라놓는 구태의연한 선택을 한 전개는 넘어가더라도, 임성한 작가의 뒤틀린 가부장 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뜩이나 이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육선지(백옥담 분)의 모친인 오달란(김영란 분)은 선지가 요리를 못한다며 죄를 지은 것마냥 사돈 문정애(박혜숙 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장면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여자는 결혼 전 요리를 배워야 하고, 요리를 못하면 눈치를 봐야 하며, 음식에 조미료 좀 넣었다고 남편에게 구박을 받는 이런 일이 30년 전도 아닌 2015년 안방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많은 이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이 같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자신의 가치관을 드라마에 녹이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 때문일 터다. 작가가 필력으로 '갑질'을 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임성한 작가는 매 작품마다 여주인공이 해박한 요리 지식을 뽐내거나 요리를 잘하는 모습으로 남자 주인공을 홀리는 모습이 줄기차게 방송됐다. 얼굴 예쁘고 요리 잘하는 여자가 최고라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늘 있었던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흐름을 타지 않고 언제나 과거에 멈춰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번 ‘압구정백야’도 요리를 못하는 여자와 잘하는 여자를 대비하며 시청자들에게 ‘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펼쳐놓고 있다.
jmpyo@osen.co.kr
'압구정백야'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