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라이트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바탕으로 시작된 '적벽대전'이다. 융중에서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섬기게 된 제갈량은 유비에게 서천 54주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북쪽은 조조, 남쪽은 손권에게 양보하지만 형주와 파촉을 취해 천하삼분의 형세를 만들라고 한다.
이후 북방을 일통한 조조의 80만 대군을 상대로 유비와 손권의 12만 연합군이 장강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삼국지 최대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이 완성됐다. 강대한 위에 맞서는 촉과 오의 동맹이 하나가 되면서 거둔 쾌거였다. 하지만 훗날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는 동맹을 깨뜨렸고, 결국 강대한 위에게 촉과 오가 차례로 무너지면서 삼국지는 결말을 맺게 된다.
다시 한 번 게임계의 천하삼분지계가 형성됐다. 과거 넥슨 엔씨소프트 NHN 또는 네오위즈게임즈 같은 'N'사들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형성됐던 게임계의 'N'사 삼국지가 이번에는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게임즈와 손을 맞잡으면서 새로운 게임계의 천하삼분지계가 만들어졌다.

게임계의 천하삼분지계가 다시 실현된 것은 다름 아닌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이 원인이다. 엔씨소프트의 대주주인 넥슨이 경영권 참여요청을 통해 자사주 소각을 요청하자 엔씨소프트는 자사주 소각 대신 넷마블게임즈의 신주 9.8%를 3800억원을 투자해 넷마블게임즈의 4대 주주가 됐다. 넷마블게임즈 역시 3900억원을 들여서 엔씨소프트의 지분 8.9%를 20만 500원에 구입하면서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가 됐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 양 측 모두 경영권 방어 차원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모바일 시장 비중이 커질 것이고, 이로 인해 양사는 글로벌 시장 확보를 위한 전략적 공조가 필요했다고 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듣는 이는 없다.
특히 넥슨의 심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넥슨 관계자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했다. 우리가 엔씨소프트의 1대 주주인데 왜 4000억원 가까운 투자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40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지만 10% 미만의 소액 지분을 확보한 점은 유감이다"며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번 제휴를 통해 의결권이 없던 엔씨소프트의 자사주는 결국 주식교환을 통해 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탈바꿈됐다.
게임업계 관계자들 다수는 "지금 형국이 서로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 될 수는 있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넷마블게임즈를 불러 들였지만 뒤의 텐센트를 의식해야만 하는 입장이 됐고, 넥슨 역시 엔씨소프트를 압박하다가 넷마블게임즈와 텐센트를 끌어들인 셈이 됐다. 추후 이 구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봐야할 것"이라면서 현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넷마블게임즈 방준혁 의장 모두 경영권 방어로 몰아가는 시선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를 했지만 이번 제휴를 통해 엔씨소프트는 넥슨에 맞설 힘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인 넥슨은 15.08%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김택진 대표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9.98%. 여기다가 3대주주인 넷마블게임즈의 8.9%가 가미된다면 넥슨이 가지고 있는 15.08%의 지분을 넘어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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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넥슨 김정주 회장,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넷마블게임즈 방준혁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