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평점 20점 주고 싶어서 아이디 두 개로 들어와 10점씩 줬습니다.’
아마 매튜 본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본 한국 네티즌의 이 칭송 댓글을 읽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스파이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16일 박스오피스 1위로 치고 올라오며 설날 극장가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CJ와 쇼박스의 투자배급작 ‘쎄시봉’ ‘조선명탐정’이 설 극장가를 양분하지 않을까 예측됐지만, 뜻하지 않은 강력한 복병이 나타났다. 두 편의 ‘엑스맨’ 시리즈와 ‘킥 애스’로 유명한 영국 출신 감독 매튜 본이 제작, 연출한 ‘킹스맨’이 바로 A급 태풍의 진원지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은 개봉 엿새 만인 16일까지 82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예매율은 ‘조선명탐정’에 이어 2위이지만 9점대(10점 만점)인 관람 후 평점과 추천도, 예사롭지 않은 입소문을 감안하면 언제든 김명민-오달수 콤비를 위축되게 만들 기세다.
'킹스맨'이 이렇게 2월 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된 건 젊은 관객 구미에 딱 맞는 경쾌한 스토리텔링과 지루할 틈 없는 화끈한 볼거리를 겸비한, 폼 잡지 않은 오락물로서의 매력 덕분이다. 거창한 메시지나 교훈도 없고, 오로지 관객의 오감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해줄까만 골몰한 것 같은 팝콘 무비에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물론 장년층이 보기엔 익숙하지 않고 고개를 돌릴 만큼 섬뜩한 장면이 중간 중간 나오지만, 20~30대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화끈함 때문에 열광하는 분위기다.
특히 엘리트 스파이 해리 역을 맡은 콜린 퍼스가 멋진 방탄복 수트 차림으로 교회에서 벌이는, 대량 살육에 가까운 액션신은 ‘소장 가치 있는 명장면’으로까지 꼽히며 회자되고 있다. 관객들은 '콜린 퍼스의 섹시함은 남자가 봐도 기절할 정도' '수트 간지 콜린 퍼스 때문에라도 재관람 의사 있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있다.
문제의 교회신은 배경 음악과 카메라 워킹까지 화제가 될 만큼 감독이 공들인 시퀀스인데 미국을 조롱하는 영국인의 시선까지 은유하고 있어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 외에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잭슨)이 공짜로 뿌린 휴대전화 유심 칩에 감염된 지구인들이 너나없이 살인마가 되고, 어느 순간 이들의 머리가 일제히 폭파되는 일명 ‘폭죽놀이’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압권 중 하나다.
1971년생 감독의 재기발랄함과 위트가 극대화된 이 폭죽신에 대해 관객들은 ‘스파이 영화와 제대로 결합된 병맛 코드’ '굉장히 잔인함에도 시선을 강탈당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감독이 마약에 취해 찍은 것 같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될 정도이며, 20대들은 이 영화를 아예 ‘약 빤 영화’로 칭하고 있다.
이 같은 ‘킹스맨’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누구에게나 억압돼있는 폭력 성향을 과하지 않게 효과적으로 건드린 게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긴장, 각성할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효과다. 여기에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현실에 대한 무기력증을 이 영화가 대리만족 시켜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는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끔찍한 모습을 우화처럼 그리는데 시급 떼먹은 편의점 주인과 스펙 따지는 대기업 면접관, 부패한 정치인을 대입시키며 통쾌함을 느꼈다는 감상평이 적지 않다. 여기에 효자이고 IQ는 좋지만 반항기 가득한 백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역시 관객의 감정 이입을 도운 영리한 접근법이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변변한 직장 한번 다녀보지 못한 낙오자가 비밀 요원으로 스카우트돼 서바이벌 오디션에 가세하고, 멋지게 세상을 구한 뒤 8등신 미녀 공주까지 품게 된다는 스토리는 익숙한 서사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은밀한 욕망 그 자체다. 억압된 폭력 본성을 건드리며 역설적으로 매너의 중요성을 설파한 감독의 연출력에 관객들이 매료되는 건 전혀 이상한 풍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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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