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 18일 요코하마 2군과 연습경기에서 2-18 대패를 당했다. 17일 SK전 0-7 영봉패에 이어 연이틀 무기력한 경기 내용. 1군 주전 선수들이 빠졌다는 걸 감안해도 크게 지는 경기를 반복하는 건 달갑지 않다. 김성근(73) 감독의 심기도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결과와 내용 모두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전 패배 후 한화 선수단은 곧바로 고친다구장으로 이동했다. 재활조를 제외하고 경기조에 들어간 15명의 야수들이 오후 5시30분 덕아웃 앞에서 원을 그려 김 감독과 미팅을 가졌다. 이어 밤 8시30분까지 맹훈련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코치들은 없었다. 오로지 김 감독과 선수들만이 남아있었다. 선수들은 번갈아 한두 명씩 짝지어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랬다.
코치들이 빠진 김 감독과 선수들만의 훈련. 이것 자체가 상당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치 캠프에서 투수 쪽만 관여하겠다고 선언한 김 감독이 코치들을 배제한 채 야수들의 훈련을 홀로 이끌었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를 의미한다. 김 감독은 앞뒤좌우를 가리지 않고 선수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지적했다.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야구공과 장비를 정리할 때 김 감독은 야구장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펑고 배트에 기댄 김 감독의 뒷모습에서는 깊은 고심이 묻어났다. 3시간 넘게 직접 서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감독실에 들어온 김 감독은 "생각할 게 많아 서있었다"고 말문을 뗐다.
김 감독은 "내용이 다 나빴다.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못 던졌고, 야수들의 실책이 나왔다. 지금 이 선수들로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 이게 아직 우리 실력이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선수들과 미팅에서도 김 감독은 강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경기에서 안 되는 것을 고치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과 귀가 제대로 열려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니까 안 된다. 왜 모자라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본인들이 알아야 고쳐나갈 수 있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으면 지금처럼 하라. 남고 싶으면 눈하고 귀, 머리를 써라".
주축 선수들이 빠진 연습경기이지만 거듭된 대패에 우려의 시선도 크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한화이기 때문에 벌써 실망감이 팽배하다. 이에 김 감독은 "지금 결과가 잘못됐다고 슬퍼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이 정도 실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런 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좋다. 그래야 '아, 모자라구나' 싶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다.
연습경기 초반 한화는 냉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 감독은 '격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보다 냉정하게 문제를 되짚고 해결 방향을 모색 중이다. 머릿속은 복잡해졌지만 선수들을 더 강하게 조련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즌 개막까지는 36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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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