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이라는 말은 흔히 가수들의 음원 차트를 설명할 때 쓰인다. ‘역주행’의 대표적인 예는 걸그룹 EXID. EXID는 음원 발표 초반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팬들이 찍어 올린 ‘직캠’ 영상 하나로 3개월 만에 다시 차트에 재진입하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이런 ‘역주행’ 현상은 비단 가요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가수들처럼 차트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 객관적 수치로 따져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배우들 역시 인기의 ‘역주행’을 종종 하고는 한다.
특히 종편채널과 케이블 채널의 영향이 더욱 커진 요즘엔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한 예능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얼굴을 찾고 있다. 거기에 개그맨, 아이돌 가수 등 다양한 연예인들이 출연을 하지만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 가장 매력적인 출연진은 아무래도 배우들이다. 자신을 보여주는데 능숙하나, 아직 민낯은 보인 적 없는 신선한 존재들. 예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배우들의 가치가 높은 이유다.
2000년대만 해도 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굉장히 규칙적이고 의례적이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개봉이나 드라마의 방송 전, 후 출연해 홍보를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얼굴을 비추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수많은 토크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사는 “최근에 영화를 찍으셨죠?”, “새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나요?” 등등. 요즘에도 이런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실히 의례적인 예능 출연이 이슈를 만들어내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예능 출연으로 가장 큰 ‘역주행’을 이뤄낸 이는 배우 이서진이다. 2011년 ‘계백’ 이후 한동안 방송을 쉬고 있었던 그는 2013년 별안간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짐꾼으로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예의가 바르면서도 동생들 앞에만 서면 시도 때도 없이 투덜대는 이 짐꾼의 인기는 곧 배우 이서진의 드라마 컴백으로 이어졌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그는 또 다른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통해 또 다시 ‘국민 투덜이’의 자리에 올라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역주행’의 기수는 배우 한고은이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까칠한 악녀 역으로 출연해왔던 그는 MBC에브리원 ‘로맨스의 일주일’에 출연하며 그 매력이 재발견됐다. 미국 교포 출신인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 남자와 능숙한 의사소통을 통해 며칠간의 로맨스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뛰어난 미모와 세련된 매너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고은은 다시 JTBC ‘마녀사냥’에 출연해 ‘마녀사냥’의 MC 허지웅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매혹적인 태도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고은의 이 같은 매력은 마흔이 넘어서도 빛나는 그의 동안미모에 날개를 달아줬고, 결과적으로 그가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은 매번 화제를 모았다.
배우 손호준 역시 또 한 번의 짜릿한 ‘역주행’을 만들어 낸 인물 중 하나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귀여운 전라도 남자 해태 역을 맡았던 그는 드라마의 성공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인기배우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는 못했었다. 정우, 고아라, 유연석, 김성균 등 전작들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들에 비해, 그는 이 드라마로 대중에 처음 얼굴을 각인시킨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응답하라 1994’의 성공 이후에도 손호준이 가야 할 길은 멀었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 그런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됐던 것은 ‘응답하라 1994’에 함께 출연했던 유연석, B1A4 바로가 함께 한 ‘꽃보다 청춘’이었고, 여기서의 인연으로 ‘삼시세끼’에까지 출연한 손호준은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배우 송일국도 잘 만난 예능으로 인해, 한 층 더 호감형의 이미지를 갖게 된 케이스. 송일국은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자신의 세 쌍둥이 아들, 일명 ‘삼둥이’라 불리는 대한, 민국, 만세와 함께 출연 중이다. 개구쟁이인 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육아에 전념하는 상냥한 아빠 송일국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성실했던 그의 이미지에 플러스가 됐다. 세 아이들이 국민 ‘귀요미’가 된 만큼 송일국 역시 국민 아빠의 반열에 오른 모양새. 2011년 ‘발효가족’ 이후 잠시 가정생활에 충실해 왔던 송일국은 이후 네 개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성화 봉송의 주자로 서는 영광도 얻었다.
이처럼 잘 만난 예능은 배우들에게 ‘역주행’을 하는 지름길이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일을 쉬고 있었던 이들을 다시 불러낸 예능 프로그램은 훌륭한 재발견의 장이 됐고, 결과적으로 배우들에게도, 프로그램에도 인기를 끌어오는 시너지를 일으켰다. 의례적인 인사치례보다 진심을 다한 만남이 깊은 인상을 남기듯, 배우들과 대중의 관계도 그러하다. 어쩌면 이 ‘역주행’의 주인공들은 이 같은 사실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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