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장기판 위 외통수처럼 마주한 갓 쓴 조선 탐정과 런던 스파이. 둘 중 하나가 웃으면 남은 하나는 표정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설 극장가를 양분하고 있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과 영국 신세대 스파이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벌이는 희비쌍곡선 얘기다.
올해 설 연휴 극장가의 경쟁 기압골 구도는 예상보다 싱겁게 형성됐다. ‘쎄시봉’과 ‘조선명탐정’의 2파전 속에 ‘킹스맨’ ‘이미테이션 게임’ 등 외화의 고기압 전선이 가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비슷한 직업군인 탐정과 비밀 요원의 대결로 일단락 됐다. 기대를 모은 ‘쎄시봉’은 일찌감치 다리가 풀렸고, 두 달 전 개봉한 앞 차 ‘국제시장’에도 뒤지는 머쓱함을 맛봐야 했다.
흥미로운 건 ‘조선명탐정’과 ‘킹스맨’이 뚜렷한 세대 차이를 보이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는 사실. 처음부터 명절 가족 코미디를 표방한 ‘조선명탐정’이 15세 관람가답게 하이틴부터 50~60대까지 전 세대를 고루 공략하고 있다면, ‘킹스맨’은 20~3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탐정’을 뒤쫓고 있다. 마치 ‘명탐정’이 산탄 발사해 목표물을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수류탄 영화라면, ‘킹스맨’은 스커드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타깃을 정조준한 영화인 셈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명탐정’의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현재 쾌재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쎄시봉’을 제치고 설 연휴 느긋하게 독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명탐정’ 입장에선 연휴 직전(16~17일) ‘킹스맨’에게 박스오피스 1위를 내주며 식은땀 깨나 흘렸을 것이다.
‘킹스맨’은 평일 이틀 연속 1위에 오르며 깜짝 이변을 연출하는 듯 했지만 18일부터 시작된 법정 공휴일을 맞아 다시 ‘명탐정’에게 챔피언 벨트를 내줘야 했다. 아무리 20대 충성 고객이 성원한다 해도 박스가 커지자 관람층이 넓은 ‘명탐정’에게 발목을 잡힌 것이다.
‘명탐정’은 ‘킹스맨’을 9만 차이로 따돌린 18일에 이어 설 휴일 당일(19일)엔 무려 20만 차이를 보이며 ‘킹스맨’을 주저앉혔다. ‘명탐정’은 이날 하루에만 43만 관객을 동원하며 24만 명을 모은 ‘킹스맨’을 더블 스코어 가까이 따돌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편과 흡사한 얼개로 오직 관객을 웃기겠다는, 시트콤 출신 감독의 코믹 직구가 주효한 것이다.
개봉 열흘째인 20일, 200만 관객을 돌파한 ‘명탐정’은 이 추세라면 손익분기점 돌파는 물론이고 4년 전 개봉한 전작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기록(478만명)까지 추월할 체력까지 비축하게 됐다. TV와 달리 티케팅 파워가 유난히 약했던 김명민 입장에선 자신의 스크린 대표작을 프랜차이즈 영화로 장식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의미 있다.
이제 ‘조선명탐정’의 롱런 여부는 연휴 막바지인 20~22일 사흘간 얼마나 질주할 것이냐에 달려있다. 3일간 200만 관객을 채운다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세워지겠지만, 만일 150만명을 밑돌면 의외로 좌석점유율이 급속히 하락할 가능성도 공존한다. 다시 ‘킹스맨’에게 1위를 내줄 확률은 희박하지만 ‘명탐정’ 입장에선 여러모로 떠올리기 싫은 그림일 것이다.
극장주들은 올 설 연휴 극장가가 생각만큼 재미없다며 입맛을 다시는 눈치다. 대작이나 화제작이 등장해 텐트 폴이 높게 세워져야 할 텐데 ‘조선명탐정’과 ‘킹스맨’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보세요. 국제시장이 3등이잖아요. 청심환을 먹었는지 개봉 두 달이나 지난 영화가 아직도 힘을 쓰는 걸 보면 신작들이 그만큼 세지 않다는 반증이죠.” 그랬다. 어쩌면 이번 연휴 최대 복병이자 반사이익을 보는 행운아는 윤제균의 ‘국제시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