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성근(73) 감독이 드디어 벤치에 앉았다. 그동안 감독실에서 지켜만 봤다면 이제는 벤치에서 경기 안으로 들어갔다.
한화는 지난 21일 삼성과 연습경기에서 3-2로 역전승하며 오키나와리그 첫 승을 신고했다. 지난 17~19일 SK·요코하마·니혼햄에 무기력한 경기 내용으로 3연패했지만, 이날은 투타에서 달라진 경기력으로 주력 선수들이 적잖게 출장한 우승팀 삼성을 잡았다.
특히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1-2로 뒤진 5회초 공격. 이창열의 2루 내야 안타와 나이저 모건의 몸에 맞는 볼로 잡은 무사 1·2루에서 권용관이 초구에 희생번트를 성공적으로 대며 1사 2·3루로 득점 확률을 높였다. 정범모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김태균 타석에서 상대 투수 폭투가 나온 사이 3루 주자 이창열이 홈을 파고들어 동점을 만들었다.

김성근 감독은 1점차로 뒤진 타이트한 상황에서 강공 대신 번트를 통해 득점의 확률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주자를 3루까지 진루시킨 덕분에 적시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상대 실책으로 득점을 낼 수 있었다. 예부터 김 감독은 다양한 작전 구사로 상대 수비를 압박, 득점을 짜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두 번째는 투수 교체였다. 2-2 동점으로 맞선 6회말 2이닝을 퍼펙트로 막던 언더핸드 정대훈이 갑자기 흔들렸다. 2루타 하나와 볼넷 2개로 1사 만루의 위기를 초래하자 김성근 감독은 우완 조영우로 투수를 교체했다. 좌타자 박해민 타석에서 언더핸드 정대훈 대신 빠른 공을 구사하는 조영우로 교체했다.
조영우는 박해민을 투수 앞 땅볼로 유도하며 1-2-3 병살타로 연결했다. 실점 없이 만루 위기 극복. 이 장면이 바로 김성근 감독이 벤치에 앉아 있고 없고 차이였다. 김 감독은 "내가 바깥에 있었으면 투수를 그냥 놓아뒀을 것이다. 승부는 거기에서 갈렸다"며 "그동안 바깥에서만 경기를 봤다"고 털어놓았다.
김 감독은 지난 경기까지 덕아웃 벤치에 앉아 경기 지휘한 것이 아니라 바깥 사이드 감독석에서 한 발짝 떨어져 경기를 관전했다. 선수들에게 경기를 맡겼다. 김 감독은 "레귤러 멤버들을 내서 벤치에 앉았다. 그동안 특별한 작전을 내지 않았다"며 이날 한화의 섬세한 야구에 대해선 "벤치에 앉았으니까"라는 대답과 함께 웃어보였다.
그동안 사이드에서 냉정하게 팀을 바라봤지만 이제는 경기 안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경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작전 구사와 효과적인 투수 교체로 경기 흐름과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 주축 선수들의 라인업 복귀와 벤치에 앉은 김성근 감독, 한화 야구가 이제야 숨은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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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