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능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인맥은? 규라인이다. 수장 이경규의 이름 한 자를 따서 이렇게 부른다. 정치인들 처럼 무슨 파벌이 형성된 게 아니고 이경규와 친한 후배들을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컫는 애칭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초창기 멤버인 이경규도 어느 덧 50대 중반에 들어섰다. 방송 중에 아내가 임신중이던 딸 자랑에 한창이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예림은 이제 성숙한 숙녀 티를 폴폴 풍긴다. 10년이면 바뀐다는 강산이 벌써 몇 차례 모습을 달리했을 세월이 흐른 것이다.
이경규는 그동안 자신이 메인MC거나 게스트로 나선 수많은 예능에서 '예림' 얘기를 쏟아냈다. 딸바보를 넘어 예림 예찬론자, 예림 신도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런 그가 SBS 파일럿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했으니 화제와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일단 첫 출발은 산뜻하고 경쾌했다.
닐슨코리아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첫 방송된 '아빠를 부탁해'는 전국 기준 13.5%의 시청률을 나타냈다. 이날 방송된 전체 예능 프로 가운데 단연 선두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대 MBC 설특집 '아이돌 육상 농구 풋살 양궁 선수권대회'(9.3%), KBS 2TV 설특집 '왕좌의 게임 슈퍼맨VS1박2일'(5.0%)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또한 MBC 설특집 다큐 '토요일 토요일은 무도다'(11.6%), '나혼자 산다'(12.3%), SBS '정글의 법칙'(11.8%) 등 기대작과 원조 인기 예능을 모두 누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물론 이같은 성적이 오롯이 이경규 부녀 덕분은 아니다. 모처럼 TV 예능에 얼굴을 내민 강석우와 조민기 부녀의 일상도 시청자들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으니까.
그래도 이경규에 남달리 눈이 가는 건 그가 방송 인생 처음으로 딸 예림과 파트너를 이뤄 예능에 출연했다는 것이고 자신의 취약 분야로 꼽혔던 리얼 예능에 재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이라는 이경규의 경우 토크쇼와 각종 행사 진행 MC로는 우월한 기량과 발군의 성과를 거뒀지만 리얼 예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말아 먹었던 프로도 여럿이다.
그런 이경규가 이번 '아빠를 부탁해'에서 확 달라졌다. 사랑하는 딸 예림과 함께 해서일까. 진솔하고 진지한 태도로 매사 열심이다. "힘들어" "나는 빼"를 연발하던 리얼 예능에서의 지친 중년 모습은 간 곳없다.특히 딸보다 개와 더 친한 ‘애정 표현 바보’가 오히려 리얼하게 비치면서 시청자 ‘폭풍 공감’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50세만 넘기면 은근히 퇴물 취급을 받는 국내 예능계에서 이경규는 아직도 막강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몇 안되는 중년 가운데 한 명이다.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한 계단 더 올라서려는 그의 도전 정신이 아름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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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부탁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