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에게는 가수 서인국보다 배우 서인국이 익숙하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버렸을까? 서인국은 연기자로 데뷔를 하고 약 2년간, 엉뚱한 친구로, 첫사랑으로, 철부지 막내아들로, 고등학생 남자친구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처음 도전한 사극에서 역사적 인물인 광해 역을 맡은 그는 다시 한 번 연기자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을 활짝 꽃피웠다.
2월 중순, 합정동 OSEN 사무실에서 만난 서인국은 최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 속 광해처럼 예의 바르고 유쾌했다. 솔직하면서도 남자다운 화법이 돋보였다.
“일단, ‘왕의 얼굴’을 촬영하면서 되게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한 신 한 신 에너지 소비가 강했어요. 사극은 그렇더라고요. 처음 겪는 사극이라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스태프들, 배우들이 재밌게 해주셔서 잘 마무리 하고, 시원한 기분이 드네요.”
처음 사극을 경험한 기분은 “배경이 아름답고 갑갑하지 않다”는 거였다. 현대극을 찍을 때와 달리 사극 현장은 확 트여있는 느낌이 들어 여유가 더 있었고, 연기하며 힘든 부분도 치유 받을 수 있었다고.
“처음 ‘왕의 얼굴’을 시작하면서는 서인국 만의 광해를 보여드리겠다, 서인국 만의 사극을 보여드리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또 작품이 너무 재밌었고요. 광해라는 캐릭터가 어릴 때부터 왕이 되기까지 과정이 매력이 있어서 그런 것에 많이 끌리더라고요.”
작품 자체나 서인국 연기에 대한 평가는 좋았지만, ‘왕의 얼굴’의 시청률은 호평만큼 높지는 않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시청률에 대한 아쉬운 부분은 없었을까? 서인국은 냉큼 “아쉽다”고 대답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아쉬워요. 안 아쉽다고 하고, 힘이 안 빠진다고 하면 거짓말이죠.(웃음) 그렇지만 이번에 하면서 느낀 건 주인공을 한 게 네 번째고, 지상파에선 처음인데 물론 케이블 방송과 현장은 다를 바 없지만, 하면서도 느끼는 건 시청률에 연연해 힘이 빠지거나 그러면 주변 스태프도 많이 힘들어한다는 거예요. 저라도 밝게 하면 스태프들도 힘이 나 하시더라고요.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 했어요.”
주연배우의 이 같은 노력 때문인지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모든 촬영을 끝낸 후 팀이 다 함께 자발적으로 M.T를 다녀올 정도였으니 말은 다 했다. 특히 서인국은 자신의 심복 역을 맡은 윤봉길과 매번 춤을 추는 게 일과였다며 현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형이랑은 맨날 춤을 췄어요. 대기하면 제가 갑자기 ‘웁치, 웁치’ 이러면 형이 웨이브를 하면서 춤을 춰요. 원래 ‘비보이’였대요. 진짜 그 형은 뭘 많이 했어요. 모델도 했는데 옛날 사진을 보면 몸이 장난이 아니에요. 그거 그만두고 살이 쪘대요. (웃음) 연기도 하면서 만능인이에요. 보드 강사도 했었고, 되게 재밌고, 의리도 있는 ‘으리으리’한 스타일이라서 참 좋아요.”
그러고 보면 서인국은 어떤 배우와도 호흡이 잘 맞는다. ‘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노하우를 묻자 “성재 형님께 배운 것”이라며 아버지 선조 역을 맡았던 이성재를 언급했다. 이성재와 함께 하는 건 드라마와 예능을 통틀어 이번에 세 번째. 드라마 ‘아들 녀석들’에서 첫째 형과 막내로 만난 두 사람은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우정을 나눴고, ‘왕의 얼굴’을 함께 준비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성재 형님이 예전에 그 애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역할을 할 때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런 게 나온대요. 그래서 되게 많이, 그런 부분들을 생각했어요. 정말 사랑에 빠진 적은 없지만, 사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브로맨스’의 경우엔 정말 이 사람을 진심으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평상시 행동 할 때도 ‘영신이 어디 있어?’하면서 챙기려 애쓰고 그런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왕의 얼굴’ 속 광해는 10대부터 30대까지 약 20년의 세월을 한 배우가 담아내야 하는 역할이다. 서인국은 지금까지 해 온 연기들이 오늘의 광해 역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역시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정말 다행인 건 지금까지 했던 연기가 다 도움이 됐어요. 왜냐면 ‘사랑비’ 때는 70년대 시대극이기도 하고 1인 2역으로 다른 인격을 연기했어야 했고, ‘응답하라 1997’ 때도 고등학교부터 서른 살까지 연기를 하는 거였어요. 나름 준비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거죠.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어릴 때 목소리 톤이나 행동 같은 것이요. 처음엔 발랄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점점 전쟁을 겪고 강해지고, 여유로워 지고, 톤도 안정적으로 장착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의 경험들이 계산적으로 할 수 있게끔 도움이 됐어요.”
서인국의 본업이 가수인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연기자 서인국을 먼저 접한 이들은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연기는 성숙해지고, 게시판엔 연기 칭찬이 쏟아진다. 실제 ‘왕의 얼굴’ 관련 게시판에는 서인국의 연기를 칭찬하는 칭찬 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가수보다 연기에 더 큰 재능이 있다는 의견들도 심심치 않게 떠오른다. 본업이 가수인데,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부담돼요. 정말 부담됩니다. 부담이 되는데 또 되게 좋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된 것 같아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것처럼, 또 칭찬이 듣고 싶은 거예요. 이번엔 작품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서인국이 사극은 안 되네’ 이야기를 들으면 힘들겠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서인국에게 좋은 일도 생겼다. 데뷔를 한 지 약 2년 만에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 만약 케이블 방송에서도 연기상이 있었다면 조금 더 일찍 받아야했을 상이었지만, 때를 놓치면 다시 받을 수 없는 신인상이기에 다행이면서 소중한 상이기도 했다.
“연기를 한 지 생각보다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안 쉬고 계속 일을 했고 작품도 꽤 돼서 오래 했구나 하시는데, 딱 2년 정도 됐어요. (웃음)저는 수상을 크게 기대 못하고 있었는데 신인상 후보에 오르고는 한줄기 빛을 봤어요. 그 한줄기 빛을 봤는데 정말 받게 됐죠. 기분 좋았습니다.”
이제 서인국은 윤제를, 민석이를 떠나 온 것처럼 광해를 떠나보내야 한다. 사극은 현대극과 달라, 빠져나오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즐거움이 더 크리라. 광해로 꽤 오랜 시간 사랑을 쏟아 준 시청자들에게 서인국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요즘에는 시청률들이 예전만큼 막, 나오지는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지 않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방송 시청률보다 떨어진 경우도 있지만, 저희는 그 이상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오른 게 참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정말 끝까지 잘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eujenej@osen.co.kr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