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범한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배우 지창욱은 딱 봉수 그 자체였다. 동그랗게 뜬 두 눈과 밝은 미소, 해맑은 목소리가 그랬다. 지난해 ‘기황후’ 이후 두 번째 만난 그는 한 층 가뿐한 모습이었다. 당시 비뚤어진 어리광쟁이 황제 타환을 멋들어지게 연기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 지창욱은 또 다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슈퍼맨, 아이언맨 못지않은 영웅 ‘힐러’로 변신, 많은 여심을 사로잡은 것.
지창욱은 최근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밤 심부름꾼으로 살아가는 힐러 서정후 역을 맡았다. 서정후는 힐러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여자 채영신(박민영 분)의 곁에 있기 위해 썸데이 뉴스의 인턴기자 봉수로 위장을 한 인물. 본의 아니게 1인 3역을 맡은 지창욱은 원맨쇼라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으로 힐러와 서정후, 봉수의 차이를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연기로는 위장된 캐릭터였지만 지창욱의 실제 성격과 닮은 건 오히려 봉수다.

“실제는 봉수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힐러’는 사실 되게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잖아요. 반면에 봉수는 있을 법한 사람이에요. 저는 오히려 봉수의 모습이 가까운 것 같아요. 봉수처럼 겁이 많은 건 아니지만요.(웃음)”
힐러는 밤 심부름꾼이라는 특수한 캐릭터 직업의 특성 상 액션신이 많았다. 줄타기는 기본이고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다니는 신도 많았다. 위험한 촬영은 대역이 했지만, 직접 해야 하는 장면들도 꽤 있었다. 지창욱은 “진짜 시킬 줄 몰랐다”면서도 “입금도 됐고, 드라마를 해야 하니 일단 하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대역 ‘경섭이’에 대한 깨알 애정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안전이었어요. 다치는 게 무섭다는 것 보다는 제가 지금 다치면 방송이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모두가 다 조심을 했고, 다시 한 번 더 연습해보고 안 다치게 많이 노력했어요. 불안했던 건 대역이 다치는 거였어요. 대역하는 친구가 어린데 몸을 사리지 않고 그냥 하더라고요. 마치 지금 당장 하다 죽어도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하니까 보는 사람이 오히려 불안했죠. 살살 하라고 해도 그게 잘 안 되나 봐요. 그게 또 그 친구의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되게 친해요. 그냥 동생 같은 아이에요. 열정이 많아요.”

상대역 배우 박민영은 한 방송에서 지창욱의 현장 별명이 ‘지너자이저’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는 것. 이에 대해 지창욱은 “그렇게 불리는지 잘 몰랐다”면서도 “현장 분위기를 만드는 건 배우가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며 소신을 밝혔다.
“인상을 찌푸리고 쳐져 있는 것 보다는 막 웃고, 더 장난치고, 까부는 게 저한테도 좋고 현장 스태프들한테도 좋은 거 같아요. 또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건 배우가 해줘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러기도 했어요. 여유가 있으면 장난을 치면서 놀고 촬영할 때는 또 촬영을 하는 건데 연기를 할 때는 스태프들이 집중 해주고, 너무 고마웠어요.”
‘힐러’는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내용과 달달한 멜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케미스트리’가 화제를 모으며 화제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 특히 지창욱의 또 다른 연기 변신은 많은 여성 팬들을 양산하는 계기가 됐다. 지창욱은 다소 아쉬울 수 있었던 시청률에도 “시청률보다는 배우의 책임감”이라며 자신이 깨닫게 된 바를 설명했다.
“‘힐러’라는 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작품을 해오면서 선배들을 보고 저도 느꼈던 것은 배우가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한 거였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거더라고요. 물론 작품이 너무 잘되고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고 하면 힘이 생기고,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안 됐을 때 스태프들은 뭘 보고 일을 할까? 생각하니 저는 제가 맡은 역할에 책임을 다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작품의 성패를 떠나 내가 책임을 갖고 이 현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더 시청률을 떠나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힐러’하면 역시 애정 신을 빼놓을 수 없다. ‘힐러’에는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유독 애정신이 많았다. 눈을 가리고 하는 키스부터 시작해 손깍지, 포옹 신까지 애정신의 지뢰밭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지창욱 역시 이 부분에 동의하며 “이렇게까지 많이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대본을 보다가도 키스를 한다고 적혀 있으면 ‘또 하네’하면서 한숨을 쉬었어요. 누나한테 ‘또 껴안더라?’, ‘또 하던데’ 이렇게 말을 할 정도로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제일 많았어요, 누나도 제일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중략) 스킨십이나 키스 신 같은 멜로 애정신이 나오면 제 친구들은 ‘야 좋았냐?’고 물어봐요.(웃음) 좋아요. 좋을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배우로 굉장히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장면이기도 해요. 쉽게 말하면 그래도 실제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아닌데 여배우가 싫어할 수 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요. 에를 들어 내가 생각했을 때 깍지를 끼는 게 더 예뻐 보일 거 같은데 ‘손을 잡는다’에서 깍지를 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처음 호흡을 맞출 때는 극존칭을 쓸 정도로 어색한 사이였지만, 애정 신을 위한 소통을 하며 박민영과는 조금씩 더 친한 사이가 됐다. 극으로 봤을 때는 진짜 연인 사이라 해도 믿을 만큼 다정한 이들의 ‘케미스트리’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기만 했다.
“누나가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얘기를 해주고 액션을 해도 잘 받아주고 하니까 더 놀 수 있게끔 된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멜로가 나가도 진짜 같아 보이고 점점 진짜에 가까워질 수 있는 그림이 됐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잘 어울린다. 예뻐 보인다고 할 때마다 잘 했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소통을 했던 것 같아요.”
‘힐러’는 지창욱에세 특별하고도 소중한 작품이다. 지창욱은 “먹먹한 순간이 많았다”고 회상하며 송지나 작가의 죽지 않은 필력을 칭찬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먹먹했던 순간이 많아요. 연기할 때 말고도 상대 대사를 들었을 때 ‘저 곰 세 마리 노래가 저렇게 슬프게 정서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작가님이 글을 그렇게 쓰신다는 거 자체가 정말 대단하구나, 작가라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되고 신기했어요. 희한하게도 보통 작품들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센 감정에서는 감정을 잡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이번 작품은 감정을 잡을 필요도 없을 뿐더러 눈물 참기가 힘들어서 NG가 났어요. 못 울게 하셔서 그게 힘들었던 작품입니다.”
지창욱은 ‘힐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면의 한계가 아쉬울 정도였다. 여전히 서정후와 힐러에 푹 빠져있는 그는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배역이 많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연기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 배우의 미래가 기대감을 낳았다.
“하고 싶은 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건 없어요. 꼬집어 말할 없을 만큼 많아요. 물론 그게 나에게 득이 될 수 있고, 해가 될 있지만 그걸 무서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게 용기인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어떤 역할을 도전해서 안 어울릴 수 있고, 혹평할 수 있지만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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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