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핫스팟]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농밀한 50가지 긴장감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2.24 09: 24

27살에 억만장자인 미남 CEO 크리스찬, 남자 경험이 없는 로맨티스트 아나스타샤. 두 주인공의 설정만 봐도 감이 딱 오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가학적인 성행위라는 자극적인 양념을 쳐서 전세계 1억부를 팔아치운 E.L.제임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개봉하자마자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거머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관심사는 원작의 인기를 견인했던 정사씬들을 어떻게 만들어냈을 것인가 하는 것. 소재에 함몰됐다가는 일반 포르노와 다를 게 없을 법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여성 감독 샘 테일러 존슨의 섬세한 연출로 농염한 멜로물로 탈바꿈했다. 로프, 눈가리개, 채찍, 얼음 등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소품들이 등장하고 적지않은 수의 베드신이 등장하지만 이를 아타스타샤의 심리와 반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존 포르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

압도적인 섹시함에 부와 명예를 가진 크리스찬은 사실 이들 장면에서 아나스타샤의 반응을 끌어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카메라를 가득 메우는 건 아나스타샤가 처음 느끼는 설렘과 당혹감이고, 크리스찬의 표정은 멀리서 잡힐 뿐이다. 그가 카메라에 가장 가까이 잡히는 건 피임도구를 챙길 때라는 점에서(그는 '19금' 영화 주인공 중에서 가장 피임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과연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라는 수식어를 받았던 원작의 위상이 실감되기도 한다.
그래서 독특한 소재의 자극성에만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정사 그 자체보다는 그에 앞서 달아오른 열기와 미묘한 유혹에 더 방점을 찍은 연출은 정작 최고조에 오른 두 주인공의 모습은 서둘러 지나가버리고, 두 사람은 열심히 밀당을 하면서 관객들을 감질나게(?) 만든다. 일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배-피지배 관계의 설정이나, 신체적 학대로 쾌락을 누리는 가학성 앞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아나스타야의 심리 묘사가 비중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이를 보기 위해 참아내야 하는 억만장자 - 순수 여대생이라는 설정은 뻔하고 유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팬픽으로 시작한 원작 소설이 주는 '오글거림'은 고급스러운 영상미와 진지한 남녀 배우의 연기로 상당부분 감소했지만, 중간 중간 실소가 터져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크리스찬 역을 맡은 제이미 도넌은 저돌적이지만 위험한 남자의 섹시함을 잘 표현했고, 아나스타샤 역을 맡은 다코다 존슨은 예쁜 바디라인과 함께 내면 연기도 훌륭하게 보여준다. 속편에서는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크리스찬의 스토리가 더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갈등의 최고점에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엔딩은 꽤 인상적이다.
개봉은 오는 25일.
rinn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