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소재를 B급 정서로 풀어낸 영화 '킹스맨'이 '19금 등급'의 한계를 딛고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5일 또 다른 차원의 '19금' 열풍을 몰고 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개봉한다.
전세계 서점가를 강타하며 1억부를 팔아치운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로 불렸던 동명 소설이 원작. 작가 E.L.제임스가 '트와일라잇' 팬픽으로 쓰기 시작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 소설은 섹시한 억만장자 크리스찬과 남자 경험 없는 여대생 아나스타샤의 성애를 담은 작품. 과하게 섹시하지 않아 오히려 매혹적인 다코다 존슨이 아나스타샤 역을,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제이미 도넌이 크리스챤 역을 맡았고 여성 감독 샘 테일러 존슨이 연출을 맡았다.
# UP : 여성 만족 정사씬

크리스챤과 아나스타샤는 지배-피지배의 설정을 통해 자극적인 성애를 묘사해나간다. 아나스타샤가 피지배 역할을 맡아 '매를 맡는' 장면이 여성들이 좋아하는 정사씬으로 소화되기는 매우 어려울 터. 다행히 감독은 아나스타샤의 표정과 반응, 당혹스러움과 설렘 등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내는데 성공하면서 기존 '19금'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정사씬의 메인도 아나스타샤다. 크리스챤이 아나스타샤를 능숙하게 리드하긴 하지만, 카메라는 줄곧 크리스챤이 아닌 아나스타샤의 놀라운 리액션에 포커스를 맞춘다. 매우 가학적인 롤플레잉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크리스챤은 아나스타샤의 반응에 매우 집중하고, 그의 의견에 100%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하물며 피임에도 열심이다.
아직 아나스타샤가 '입문' 과정이라, 거부감을 보일만한 롤플레잉도 등장하진 않는다. 얼음, 로프, 채찍 등 이미 다른 영화에서 자주 쓰였던 소품들이 주를 이루며, 이들 장치 역시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에 머문다.
이같은 시각에서 이같은 정성으로 그려진 정사씬은 기존 남성 중심의 19금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긴 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번 보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
# DOWN : 참을 수 없는 오글거림
그러나 크리스챤의 캐릭터는 아무리 참아보려해도 오글거리긴 한다. 27살에 억만장자가 됐다는 설정은 차치하고라도, 졸업 선물로 비싼 차를 사주고, 헬리콥터를 태워서 집에 데리고 오는 장면들은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긴 커녕 헛웃음이 나온다.
크리스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후끈 달아오르는, 성적 욕망이 꽤 솔직하게 표현돼 신선한 아나스타샤의 매력도 정작 크리스챤과 불꽃 튀는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내진 않는다. 크리스챤의 캐릭터가 너무 '붕' 떠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수위 높은 정사씬만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색다르긴 하지만 강도가 세지는 않기 때문. 이 영화에서는 비욘세 등의 노래가 매우 매혹적으로 깔리는데, 자극성만 추구한다면 차라리 이들 팝스타의 뮤직비디오가 더 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자극 그 자체보다는 남녀 사이에 공기를 꽉 채우는 성적 긴장감에 더 집중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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