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29, 넥센)는 현 시점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KBO 리그 최고의 타자다.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고 2012년과 2013년은 2년 연속 리그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200안타 대업’을 이룬 팀 동료 서건창이 없었다면, ‘52홈런’을 앞세워 MVP 트로피가 하나 더 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년 유망주였던 그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돌려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3년 연속 홈런왕, 지난해 50홈런 타자가 더 좋은 성적을 내기도 쉽지 않다. 또한 경쟁자들의 추격을 온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치는 그렇지 않다. 이제 팬과 관계자들은 박병호가 더 좋은 성적을 내길 잔뜩 기대하고 있다. 성적이 떨어질 경우 비난은 온전히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이제 그는 ‘30홈런만 쳐도 잘했다’라는 소리를 들을 위치가 아니다. 넥센 타선을 이끌어야 하고 그라운드에서도 리더가 되어야 한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다. 그래서 부담이 생길 법하다. 그러나 박병호는 이런 질문에 오히려 빙그레 웃는다. 고교 시절부터 ‘4번 타자’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살았을 법하지만 박병호는 “야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수치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박병호는 “홈런 개수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신 자신의 목표를 명확하게 세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는 3년 동안 꾸준히 홈런 개수를 추가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명확하고 모든 신경은 그것에 쏠려있다.
박병호는 지난해를 통해 또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시즌을 치르면서 부족한 점을 찾았다. 하지만 시즌 중에 갑작스런 변화를 주기가 어려워 보완은 이번 겨울의 몫으로 남겨뒀다. 그리고 겨울이 시작되자마자 그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박병호는 “시즌 때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애리조나 캠프부터 그 부분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는 과정이다. 생각대로 잘 올라오고 있다”라며 현재 상황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즐거운 표정이 묻어났다.
대신 책임감은 느끼고 있다. 팀의 간판으로서 자신에게 어떤 기대가 걸리고 있는지 잘 아는 박병호다. 특히 올해는 더 그렇다. 함께 중심타선에 위치하며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냈던 강정호(28,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 팀을 떠났다. 박병호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박병호는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다”라면서 “이제 오키나와에 왔으니 빨리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마치 자신이 흘린 땀의 성과를 빨리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박병호가 또 다른 한계에 도전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