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SK와 넥센과의 연습경기가 취소된 뒤 서건창(넥센)은 실내연습장에서 타격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염경엽 넥센 감독이 서건창을 불러 세우더니 몇 마디 조언을 한 뒤 다시 자리를 떴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렇다면 염 감독은 서건창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염 감독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다지라고 이야기를 했다”라고 긴 대화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했다. 서건창은 지난해 전인미답의 고지였던 단일시즌 200안타를 친 역사적인 주인공이다. 하지만 염 감독은 서건창이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선수라며 고개를 저었다. ‘누르거나 밟거나 쳐서 단단하게 만들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다져라”라는 조언은 그래서 어울렸다.
서건창은 지난해 독특한 타격폼으로 화제를 모았다. 스스로 더 좋은 타격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애쓴 훈장이었다. 그 노력은 200안타라는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타격폼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직 1년 남짓이다. 20년 넘게 야구를 해온 선수의 인생을 생각할 때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외풍 한 번에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이를 잘 아는 염 감독은 “단점보다는 장점을 생각하면서 계속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매년 그런 과정을 통해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는 서건창의 문제만은 아니다. 넥센은 최근 리그 최고의 타선을 무장한 팀으로 거듭났다. 장타면 장타, 타율이면 타율 모두 리그를 선도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한 결과였다. 하지만 염 감독은 “우리 팀에서 어느 정도 확고한 수준에 올라 있는 선수는 이택근 뿐이다. 이제 박병호가 막 그런 단계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라면서 “서건창이나 나머지 선수들은 아직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현재의 넥센 타선을 구상하고 시침질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한 염 감독의 진단이기에 누구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3년 정도 성적을 유지해야 진정한 자신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야구계 속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다. 특히 젊은 선수들은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 염 감독이 방심을 잔뜩 경계하며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이유다. 염 감독은 “생각을 하면서 야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슬럼프에 대처할 수 없다”라고 선수들의 의식 전환을 당부했다.
하지만 반대의 시나리오도 기다리고 있기에 염 감독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는 않다. 이택근과 박병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수들이 성장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 감독도 “지켜봐야겠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일”이라며 알 듯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선수들이 의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몫이다”라며 다시 다른 선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타선의 완전한 박음질을 꿈꾸는 염 감독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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