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SK 감독은 아마추어와 실업야구 시절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실업 당시의 명성만큼 피질 못했다. 전성기와 프로출범 시기가 엇나간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다. 사실상 야구를 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선수층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이라 코칭스태프 또한 이를 알면서도 출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시의 ‘최신요법’은 이제 쓴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래서 그럴까. 김 감독은 선수들의 몸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지도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이 부임한 뒤 SK 선수단에는 구호 아닌 구호가 하나 생겼다. “아프면 쉬어”라는 이야기다. 농담이 아닌, 실제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 당시부터 그랬다. 경미한 부상이더라도 통증이 있으면 훈련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좀이 쑤실 정도로 철저히 배제됐다. 올해 전지훈련도 마찬가지다. 예년 같았으면 참고 뛸 만한 선수들도 전원 훈련이나 경기에서 빠진다.

심지어 귀국 조치된 선수들도 있다. 플로리다 1차 캠프에서는 러닝 도중 햄스트링을 다친 윤길현이 그 대상자가 됐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김 감독은 “한국에서 더 완벽히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선수를 설득했다.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는 김성현 여건욱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역시 두 선수 모두 큰 부상은 아니었다. 실전에 돌입해야 하는 시점, 그리고 두 선수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오키나와에서 경과를 지켜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예외가 없었다. 김성현 여건욱의 추후 일정은 아직도 미정이다. 김 감독은 “몸 상태가 우선”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취임 당시부터 이런 지론을 이야기했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 아픈 선수를 무리하게 경기에 내보낼 생각은 없다고 했다. 불펜투수들의 무리한 연투도 없을 것이라 공언했다. 대신 기존 부상자들의 차분한 재활, 웨이트트레이닝을 비롯한 기초 체력 보강은 역점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다. 실제 박계현 등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한 선수들은 몰라볼 정도의 ‘몸짱’이 된 경우도 많다.
적어도 몸 관리에 있어 급할수록 돌아가는 김 감독의 성향은 조금씩 성과가 보이고 있다. FA 계약이 늦어져 몸 상태가 덜 올라왔던 나주환은 김 감독의 지시 속에 강화도에서 훈련을 거듭했다. 경쟁자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분히 자신만 돌보면 되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그 결과 지금은 경기에 뛸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가 됐다. 김 감독은 “많이 좋아졌다. 여기(오키나와)서 좀 더 올라오면 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윤길현 또한 개막 마무리로 낙점될 정도로 빠르게 몸 상태가 올라왔다. 작지만 큰 변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사람 좋은 배려는 아니다. 김 감독은 “3할을 칠 수 있어도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2할5푼을 치더라도 경기에 꾸준히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백번 낫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스로 몸 관리를 못하는 선수는 아무리 스타 선수라도 전력에서 배제하고 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 사이 치고 올라오는 선수도 있다. 당장 대만의 퓨처스팀(2군) 캠프에 갔던 박철우는 김성현 대신 오키나와로 합류했다. 김 감독은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칭찬하며 연습경기에서도 기회를 주고 있다. 이처럼 당근과 채찍을 모두 든 김 감독이 매년 부상으로 고생했던 SK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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