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호정이 확 바뀌었다. 데뷔 이후 주로 착하거나 현모양처 역할만 맡았던 그가 아수라 백작 같은 인물로 완벽히 탈바꿈을 했다. 꿈틀거리는 ‘못된 구석’을 억지로 누르다가 결국 이성을 상실하고 실체를 드러낸 그의 정밀한 연기가 상류층 풍자로 웃음을 선사하는 ‘풍문으로 들었소’의 흥미 지점이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SBS 새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2회는 대한민국 정계와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변호사 한정호(유준상 분)와 최연희(유호정 분)의 아들 한인상(이준 분)이 ‘엘리트 코스’를 이탈할 위기에 기함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인상은 여자친구 서봄(고아성 분)을 임신시킨 상태. 아들의 사법고시 준비는 물론이고 결혼 상대자까지 미리 계획하고 있던 연희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유호정이 보여준 연희의 철저한 이중성은 그동안 안방극장에서 봤던 유호정의 연기와 많이 달랐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뾰족한 구석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 연희라는 인물의 감정의 변화에 자꾸 시선이 갔다. 뒷말이 나올까 겉으로는 봄이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봄이가 자신과 아들의 앞길을 망쳐놓았다고 생각해 경멸하고 어떻게든 봄이를 떼어놓기 위해 수습하기 바빴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자신의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누르진 못했다.

어린 시절 소중하게 지킨 유리 공예가 깨진 듯 엉엉 눈물을 쏟았다. 아기를 돌보겠다는 봄이의 말에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며 참아왔던 악독한 면을 드러냈다. 억눌린 분노를 숨기느라 어색한 존댓말은 유호정의 흔들리는 눈빛 연기와 함께 긴장감을 높였다. 사람을 죽일 듯 매서운 눈빛을 보이는 실수를 했다가 겨우 숨겼지만 결국 격노를 하는 연희의 발악은 이날 ‘풍문으로 들었소’의 강렬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이 화들짝 놀라 달려와서 입을 막을 정도로 폭언을 하는 연희는 더 이상 고고한 겉모습으로 포장할 수 없었다. 비서의 만류에도 진노하며 발버둥을 치는 연희, 그리고 우아했기에 더 큰 반전으로 다가왔던 ‘온몸으로 참았던 분노를 폭발하는’ 유호정의 연기에 시청자들을 크게 한 번 웃었다.
유호정이 묵혀둔 감정을 폭발하는 이 장면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연기를 하는 고아성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비서를 연기한 서정연과 대비되며 연희의 불편하고 복잡한 속내가 더 확연히 드러났다. 유호정은 이 드라마에서 겉과 속이 다른 연희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풍자의 묘미를 안기고 있다. 어떻게든 더러운 속살을 감추려고 하지만 한번 불어닥친 태풍은 연희가 수십년간 지켜온 자존심을 뭉개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연희와 그의 집안이 풍비박산 날 위기인 인상이 ‘애 아빠’가 됐다는 소식이 퍼질 가능성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 회가 거듭될수록 변화무쌍한 성향을 드러낼 유호정의 연기가 안방극장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동시에 대부분 선한 인물로 안방극장을 찾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을 더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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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