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수(29, SK)는 왼손투수로서 빠른 공을 던진다는 매력이 있는 선수다. 구위 자체만 놓고 본다면 직구와 슬라이더 조합으로도 능히 상대 타자를 제압할 수 있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런 진해수를 항상 옥죄는 단어가 있었다. 제구력이었다.
실제 지난해까지 진해수의 제구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삼진을 많이 잡기도 했지만 볼넷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꼭 볼넷을 주지 않아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며 불리한 볼 카운트에 몰리기도 했다. 보직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나서는 경우가 많은 불펜, 그리고 왼손을 겨냥한 스페셜리스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실제 진해수는 지난해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4할2푼9리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런 진해수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쾌조의 구위를 과시하며 코칭스태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4차례의 등판에서 4이닝을 던지며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13타자를 상대하며 피안타는 2개, 볼넷은 하나뿐이다. 연습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불펜 에이스다. 24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도 1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았다. 이날 SK의 투수은 전반적으로 다들 고전했으나 진해수는 예외였다.

투구폼이 일정하지 않아 밸런스가 흔들리던 단점을 잡기 위해 애를 쓴 결과다. 하체를 보강했고 공이 빨리 넘어오는 단점을 바로잡는 등 겨울 동안 좀 더 일정한 릴리스포인트를 잡기 위한 훈련에 매진했다. 그 효과가 단번에 나타나고 있다. 제구의 불안감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경기를 시작하다보니 슬라이더도 빛을 발한다. 요미우리 타자들은 진해수의 슬라이더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연신 헛방망이를 휘둘렀다.
연습경기라 심리적으로 편안한 환경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감을 쌓고 있다는 점에서 나쁠 것은 없다. 여기에 아직 최상의 몸 상태도 아니라 기대감은 더 커진다. 진해수는 “몸 상태가 아주 좋다거나, 혹은 공이 아주 잘 간다는 느낌을 받는 단계는 아니다. 내용에 비해 결과가 좋은 것은 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제구가 잡히고 힘이 떨어지지 않는 진해수라면 리그 최정상급 왼손 불펜 요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지난 2년간 워낙 많이 던진 진해수다. 2013년에는 72경기, 지난해에는 무려 75경기에 나섰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진해수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라고 강조하며 고개를 젓고 있다. 오히려 치열해진 경쟁에 각오를 단단히 하는 중이다. SK는 올해 군에서 제대한 정우람이 가세하며 왼손 불펜진이 보강됐다. 박희수도 재활의 땀을 흘리고 있다. 진해수밖에 기댈 곳이 없었던 지난해 상황과는 사뭇 달라졌다.
진해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며 생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진해수는 “어차피 경쟁이다. 프로에서 경쟁은 항상 있는 것이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과 성장 추세라면 진해수가 경쟁할 곳은 팀 내 왼손 불펜진이 아닌, 리그 최고의 왼손 스페셜리스트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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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