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여배우들에게도 오랜만에 마음껏 놀아볼 기회가 왔다. 같은 엄마와 아내 역할이라도 뭔가 조금 다른, 개성이 가득한 캐릭터들은 연기를 하는 이들에게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축복이었다. 종영한 KBS 2TV ‘가족끼리 왜 이래’, ‘왕의 얼굴’ SBS ‘펀치’부터 시작해 경쟁작들인 SBS ‘하이드 지킬 나’나 MBC ‘킬미힐미’ 등에서까지 다양한 남성캐릭터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기, 오랜만에 출현한 명품 여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가 안방극장 대진표에 풍성함을 더했다.
지난 25일 오후 10시 첫 방송된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하 '착않여')은 연기파 여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재벌가 며느리들에게 요리 강습을 하는 안국동 강순옥 선생 역의 김혜자부터 그의 딸이자 천방지축 사고뭉치 김현숙 역의 채시라, 김현숙과 정반대 성격의 언니이자 방송국의 간판 앵커 김현정 역의 도지원, 김현숙의 딸로 최연소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마리 역의 이하나까지 네 명의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화하며 꽉 찬 60분을 이끌어 갔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드라마의 가장 중심에 선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현숙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진행됐다.

현숙은 딸 마리를 최연소 국문학 박사로 키워낸 엄마지만 잘난 언니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열등감 속에 살아온 인물. 그런 그는 엄마 순옥이 일평생 모아 온 수억 원의 돈을 가게 자리를 보겠다고 가져간 후 사기를 당해 날려 버렸다.
현숙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절친한 친구인 종미(김혜은 분)에게 100만원을 빌려 불법 도박장으로 향했다. 돈을 따서 만회를 해볼 요량이었던 것. 하지만 돈을 따려는 순간 경찰들이 도박장을 덮었고, 현숙은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됐다.
자살시도를 하기도 여러 번. 비참해진 그는 아버지 철희(이순재 분)의 무덤에 가서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뭘 잘해 본 적이 없다. 모자란 딸, 처지는 학생이었다. 잘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비난받을 일인가요?”라고 말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중 여고시절 자신을 학교에서 쫓아냈던 선생 나현애(서이숙 분)의 인터뷰 기사를 본 현숙은 분노에 가득차 “이 여자가 내 인생을 망쳐 놨다. 나 당한만큼 갚아줄 거야, 그 여자한테 복수할거야”라고 말한 뒤 쓰러져버렸다.
SBS ‘다섯손가락’ 이후 약 2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채시라의 강렬한 연기는 보는 이들의 몰입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김혜자와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고민이 많은 현정을 표현하는 도지원, 특유의 엉뚱하면서도 털털한 매력을 뽐내는 이하나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유쾌해 다음 회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강순옥의 미스터리한 제자 박은실 역의 이미도나 현숙의 단 하나뿐인 친구 종미 역의 김혜은, 나현애 선생 역을 맡은 서이숙까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여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전반적으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가족드라마였다. 남녀노소 함께 보기에 부담이 없는, 폭 넓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만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 같은 설정에 일부 시청자들은 이 작품이 주말극의 자리에 편성됐어야 한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시청자 층의 범위를 넓이지 않아도 충분히 다수의 공감과 흥미를 자아낼만한 내용이라 큰 우려는 없었다.
보통 여배우들은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없다"며 비슷비슷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는 한다. 과연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포진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얼마만큼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착않여'는 뜨거운 피를 가진 3대 여자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리는 작품. '메리 대구 공방전', '적도의 남자'들을 집필한 김인영 작가와 '브레인', '내 딸 서영이' 등을 연출한 유현기 PD가 처음 손을 잡았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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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않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