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없어요”
박정권(34, SK)은 팀에서 올 시즌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선수 중 하나다. 팀의 시각에서는 중심타자 및 클럽하우스의 리더 몫을 해야 한다. 개인의 시각에서는 일생일대의 기회인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다. 생각이 많아질 법한 시기다. 하지만 박정권은 이런 질문에 대해 허공을 응시하며 “아무런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비움, 버림의 단어가 박정권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다.
박정권은 대표적인 가을 사나이다. 가을이 되면 펄펄 날았다. 중요한 경기에서도 맹활약해 ‘미스터 옥토버’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가 문제였다. 유독 봄에 좋지 않았다. 여름에는 2군에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아올랐다. 이런 패턴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박정권은 “고민이 많다. 미쳐버리겠더라”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사슬을 끊기 위해 발버둥도 쳐봤지만 결과는 매년 같았다.

봄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지금, 박정권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면 거짓말이다. 실제 매년 이맘때 박정권은 “봄부터 꾸준하게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이뤄질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올해는 아예 생각을 버렸다.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고 그냥 순리대로 가겠다는 의지다. 박정권은 “생각을 최대한 비우려고 노력한다. 마음 먹은대로 모든 일이 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습경기 부진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다. 박정권은 오키나와 연습경기 5경기에서 타율 1할1푼1리에 그치고 있다. 24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는 몸 상태가 약간 좋지 않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나, 주위에서나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 시즌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감도 읽힌다. 한 관계자는 “타격에는 주기가 있다. 지금 떨어져 있으면 시즌에 맞춰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라며 박정권의 초반 활약을 기대했다.
박정권의 비중은 상당하다. 김용희 감독은 올 시즌 최정 박정권 브라운 이재원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 박정권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오른손 타자다. 박정권이 무너진다면 타선의 균형도 같이 무너진다. 마땅한 대체자도 없다. 오로지 박정권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런 부담감까지도 최대한 비워내겠다는 박정권이 담담하게 2015년 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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