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컸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했던 나주환(31, SK)의 이야기다. 시장에 나갔지만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가치보다 낮은 금액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상실감은 당연했다.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 자존심에도 상처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방망이와 글러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나주환의 어깨를 토닥거린 사람들이 있었다. 2군 코칭스태프였다. 가슴 한구석에 생채기가 난 나주환을 진심 어린 말과 행동으로 격려했다. 그 따뜻한 격려에 나주환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나주환은 “올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하면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라고 이야기했다.
FA 계약이 늦어진 나주환은 SK의 플로리다 1차 전지훈련 명단에서 빠졌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용희 감독은 계약 문제로 지쳐있을 나주환을 국내에 남겨 몸 상태부터 끌어올리길 바랐다. 일종의 배려였다. 1군 선수단이 미국으로 떠나자 나주환을 챙겨야 하는 임무는 2군 코칭스태프로 넘어갔다. 그리고 2군 코칭스태프는 나주환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나주환의 재기를 도왔다. 상처받았던 나주환은 그렇게 강화도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나주환은 “계약은 계약이고, 운동은 운동이다. FA 계약 때도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는 있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세이케 2군 감독님을 비롯, 트레이닝파트에서 심리적·기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라면서 “무리하지 않고도 몸 상태를 조금씩 끌어올릴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 그렇게 따랐더니 대만 전지훈련에 갔을 때 컨디션이 100%가 되더라. 사실 강화도에 다른 2군 선수들도 많았는데 나 하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라고 감사해했다.
나주환은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는 FA 계약에 대해 “계약에 대한 아쉬움을 완전히 털어냈다면 거짓말 아니겠는가. ‘나에게 FA는 없었다’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강화도를 감싸고 돈 따뜻한 온기 속에 예전의 기억은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나주환은 “시장에 나가 부름을 못 받은 것도 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면서 반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한 이후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경쟁에 돌입했다. 현재 SK의 2루는 나주환을 비롯, 베테랑 이대수와 신예 박계현까지 세 명이 경쟁하는 구도다. 이대수는 가고시마 마무리훈련 때부터 꾸준히 2루를 지켰다. 빠른 발을 가진 박계현은 급성장 중인 선수다. 지난해 주전으로 2루를 지켰던 나주환이지만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 나주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겠다는 각오다.
‘수성’의 위치에 선 나주환은 “잘 하는 선수가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 뒤 “다치지 않고 뛴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치열한 경쟁이지만 한 차례 바닥을 경험한 나주환은 그 경험에서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자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세워 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한다. 인터뷰 내내 ‘감사’를 이야기 한 나주환이 다시 뛰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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