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27, SK)은 KBO 리그의 최정상급 투수다. 역동적이고 까다로운 투구폼에서 나오는 빠르고 위력적인 공, 그리고 그 빠른 공과 짝을 이루는 슬라이더의 조합으로 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다. 그런데 김광현이 새 구종 연마에 땀을 흘리고 있다. 모범답안을 줄줄이 외울 정도로 취재진 및 팬들의 관심도 이 새 구종에 맞춰져 있다.
김광현은 이번 캠프에서 체인지업과 커브와 같이 그간 잘 던지지 않았던 구종들을 집중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부터 점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광현의 폼 자체가 체인지업을 던지기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매커니즘이 달라 모두 잘 던지기는 쉽지 않다.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충분히 잘 해왔던 선수 아닌가. 슬라이더에 전념하는 것이 낫다”라고도 말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김광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는 김광현이다. 김광현이 체인지업이나 다른 구종에 애를 쓰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목표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김광현은 올 전지훈련이 시작되기 전 가장 큰 목표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이다. 구체적인 이닝에 대한 목표를 밝히지 않았지만 144경기 체제라면 ‘200이닝’이라는 상징적인 수치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마운드에 더 오래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 마운드에 더 오래 남아 있기 위해서는 잘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투구도 중요하다. 김광현의 지난해 경기당 투구수는 107.5개로 리그 최고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닝당 투구수는 17.3개로 다소 많았다. 제구가 조금 흔들리는 날은 5회까지 결과가 좋고도 한계 투구수에 일찍 다다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광현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한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직구와 슬라이더 조합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타자들도 바보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눈에 익는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서는 슬라이더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 타자들과의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타자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광현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광현의 공을 직접 받는 포수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이재원은 “김광현이 나오는 날은 나도 그렇게 (정)상호형도 그렇고 이상하게 투구수가 많았다. 김광현 등판일에는 항상 전광판의 투구수만 쳐다봤다. 그런데도 (투구수 관리가) 잘 안 되더라”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체인지업이 추가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이재원의 이야기다. 이재원은 “김광현의 체인지업이 많이 좋아졌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많아지면 볼배합이 편해진다”라고 확신했다.
정상호 또한 “김광현은 직구와 슬라이더가 모두 강-강의 패턴으로 간다. 여기서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구종이 하나 있으면 땅볼유도가 쉬워지고 궁극적으로는 투구수를 줄일 수 있다”라면서 “슬라이더 타이밍에 제대로 된 체인지업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위력은 배가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면을 짚었다. 분명 구종 추가는 김광현의 앞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공통된 목소리다.
그렇다면 김광현의 생각은 어떨까. 이닝이터에 대한 책임감에 불타오르고 있는 김광현 또한 구종 추가가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관건은 얼마나 완벽하게 던질 수 있느냐다. “올해는 반드시 투구수를 줄여야 한다”라고 강조한 김광현은 “구종만 늘린다고 다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구종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제구가 잘 될 때 이야기”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결국 자신이 잘 던져야 모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현은 제구가 기본이라는 냉철한 현실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김광현은 “막상 시즌에 들어가서 못 던진다면 중요한 순간에 체인지업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지는 남겼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캠프 때부터 직구와 슬라이더를 제외한 다른 공을 의식적으로 많이 던졌다. 그리고 성과는 조금씩 나타난다. 니혼햄과의 연습경기에서는 체인지업으로 상대 타자의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기도 했다. 2이닝에 필요한 투구수는 22개뿐이었다. “아직 만족스러운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김광현의 자세는 분명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최고 투수의 진화는 올 시즌 또 하나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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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