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주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니 또 다시 경쟁이다. 이런 상황이 몇 년째 되풀이된다. 낙심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임훈(30, SK)은 “섭섭해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 경쟁을 이겨본 경험도, 자신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해는 확실히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는 각오로 땀을 흘리고 있다.
SK 외야를 이야기할 때 당장 생각나는 이름이 ‘임훈’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임훈을 뺴놓고는 SK 외야를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은 확실하다. 정확도 있는 타격, 견실한 수비를 앞세워 SK의 외야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성적도 좋았다. 시즌 중반 돌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더니 시즌 막판까지 주전급 선수로서 자리매김했다. 90경기에 나가 타율 3할1푼4리, 9도루를 기록했다. 역대 연봉도 회복했다.
지난해 성적이라면 외야 주전 라인업에서 임훈의 이름을 빼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상황이 또 묘해졌다. SK는 새 외국인 타자로 외야수인 앤드류 브라운을 뽑았다. 많은 돈을 들인 선수인 만큼 브라운에게 우선순위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김용희 감독도 이명기 김강민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일단 먼저 고려하고 있다. 굴러 들어온 돌에 다시 백업으로 밀려날 위기다.

하지만 임훈은 낙담하지 않는다. 임훈은 “경력만 놓고 보면 작년에는 더 대단한 선수가 오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었다. SK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통산 135홈런의 주인공인 루크 스캇을 영입했었다. 스캇에 외야 한 자리를 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스캇은 부상에 고전했고 결국 항명파동을 일으킨 끝에 퇴출됐다. 그리고 임훈은 스캇에 비해 더 정교한 방망이와 수비로 맹활약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임훈은 “시즌에 들어가 봐야 아는 일이다. 브라운이 먼저 나가기는 하겠지만 나는 최대한 준비를 잘 하면 될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도전자가 된 상황이라 그럴까. 임훈은 더 훈련을 열심히 했다. 변신도 시도했다. 임훈은 장타력 향상에 주안점을 뒀다. 중장거리 타자로 불리기는 하지만 홈런 개수가 적다는 것을 의식한 변화다. 임훈은 “체격적으로는 몸도 많이 불렸다. 타격 쪽에서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게 스탠스도 조금 벌렸다.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지만 점차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확고한 외야 주전을 위한 쐐기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도와 수비가 좋은 임훈이 장타력까지 갖춘다면 SK는 더 이상 외야 외국인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
한 차례 실패도 임훈의 머릿속에서 방심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있다. 임훈은 2012년 117경기에 나섰다.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경기였다. 그러나 그 기세를 2013년에 이어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임훈은 “2013년이 너무 아쉬웠다. 어깨가 아픈 것도 있었지만 준비했던 것에 비해 잘 안 되니까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고 떠올린다. 꾸준히 자리를 잡으려면 그 때처럼 하락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임훈이다. 2015년 각오가 남다른 이유다.
임훈은 항상 성실히 훈련하는 선수도 칭찬이 자자하다. 지난해도 그랬다. 임훈은 스캇의 가세에 대해 묻자 “열심히 준비했다. 기회가 온다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준비는 충실히 했다. 자신감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기회다. 임훈은 “야구에 눈을 한 번 뜨고 싶다”라는 짧고 굵직한 말과 함께 2015년을 기다리고 있다. 차분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준비된 임훈은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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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