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훈련방식도 유행이 있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이 선수단을 이끌고 오대산 지옥훈련을 치른 뒤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자 이듬해 삼성 라이온즈는 팔공산으로 향한다. 베테랑 최동원과 이만수를 비롯, 성준과 류중일, 신인 투수 김상엽 등이 얼음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동안 이러한 ‘지옥훈련’은 프로야구 연례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자율훈련’으로 성과를 내자 많은 구단들은 메이저리그 식 훈련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지옥훈련을 해도 한겨울 산속에 가서 얼음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다. 로이스터 감독 당시 롯데처럼 완벽하게 자율훈련을 하는 구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최소한 작년까지 프로야구 구단들의 스프링캠프 훈련방식과 양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한 지도자들이 현장에 돌아오면서 프로야구 스프링캠프 풍속도를 바꿔놓았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다시 한 번 프로야구판에 ‘지옥훈련’을 되살렸다. 점심 메뉴를 도시락으로 바꿔가면서까지 훈련에 매진했고 한화는 프로야구 최고의 화제구단이 됐다. 김성근 감독은 일부 투수들의 귀국일정까지 늦추면서 최대한 오랜 시간 일본 고치캠프에 남아 있다.

지옥훈련은 김성근 감독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NC 김경문 감독의 훈련양도 결코 적지 않다. NC 구단 관계자가 “우리도 한화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할 정도다. 한화가 캠프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에 머물렀다면, NC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미국에만 머물면서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김성근 감독의 수제자인 조범현 감독도 지옥훈련 파에 가깝다. 3명의 감독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가을야구의 주인공이었는데 올해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 주목된다.
가장 자율적인 분위기로 훈련이 진행된 구단은 넥센이다. 염경엽 감독은 부임 3년 차인 올해부터 확실하게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애리조나 캠프에서 넥센 선수단의 단체훈련은 오전이면 끝이 났다. 점심식사 후 짧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공식 훈련 스케줄의 전부였다. 물론 야간훈련은 있었지만 철저하게 자율로 진행됐다. 아무리 바로 옆에서 선배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어도 자기 훈련만 마치면 숙소로 돌아가는 어린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롯데 역시 자율훈련을 올해 컨셉으로 잡았다. 이종운 감독은 “억지로 시키는 훈련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선수들이 훈련을 왜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오전에는 단체훈련 중심으로 진행하고, 오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개인훈련 시간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종운 감독의 설명대로 롯데는 오전에 대부분의 훈련 스케줄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만 했다. 그래도 오후 3시를 거의 넘기지 않았다. 자율훈련이라고 해서 훈련양이 적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롯데는 훈련 집중도는 높이는 대신 시간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SK 김용희 감독 역시 자율훈련 파로 분류할 수 있다.
삼성, 두산, LG, KIA는 매년 해왔던 것처럼 겨울을 보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했다. 통합 4연패 중인 삼성은 굳이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고, 두산과 LG, KIA는 현 감독과 처음 치르는 스프링캠프를 무리 없이 마무리 짓고 있다.
지옥훈련과 자율훈련 중 정답은 없다. 결과만이 모든 걸 말해줄 뿐이다. 한화가 긴 침묵을 깨고 비상한다면 당장 내년 캠프에서 훈련량이 늘어나는 구단이 생길 것이며 자율훈련을 실시했던 구단이 성과를 낸다면 다시 프로야구에 메이저리그식 훈련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