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SF 영화의 틀을 깨는 닐 블롬캠프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3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영화 ‘채피’는 로봇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통해 인간의 자아성찰, 그리고 더 나아가 SF 영화의 미래를 제시했다.
‘채피’는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로봇 채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가까운 미래인 2016년, 매일 300건의 범죄가 폭주하는 요하네스버그는 도시의 치안을 책임지는 세계 최초의 로봇 경찰 스카우트 군단을 사용한다. 이 스카우트 군단을 설계한 로봇 개발자 디온(데브 파텔 분)은 폐기된 스카우트 22호에 고도의 인공지능을 탑재,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고 성장하는 로봇 채피를 탄생시킨다.

진화하는 로봇에 맞서 인간의 힘으로 로봇을 통제하고 싶은 무기 개발자 빈센트(휴 잭맨 분)는 이런 채피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그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 결국 채피는 인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몰리게 된다.
간단한 시놉시스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대립을 다룬다. 이와 같은 내용의 SF 영화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채피’가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는 건 인간이 악함을 대변하고 로봇이 선함을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채피는 디온에 의해 탄생, 어린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그 삶을 시작한다. “이것은 신발”, “이것은 책” 등 말을 하나하나 배워가고 엄마, 아빠로 생각하는 닌자, 요란디를 향해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할 정도로 영락없는 아이의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범죄는 나쁘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반면 인간 빈센트는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채피를 파괴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살생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이 개발한 로봇 무스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 그리고 이에 맞서 로봇 채피가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 중간 저지르는 나쁜 행동들은 모두 인간의 학습에 의한 것으로 그려져 인간이 만들어낸 주변 환경이 선(善)을 악(惡)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채피’의 메가폰을 잡은 닐 블롬캠프 감독은 이전에도 조금은 다른 시각의 영화를 만들어내며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특히 데뷔작인 ‘디스트릭트 9’에선 그간 침략자로만 그려졌던 외계인을 인간들의 지배를 받으며 지구에서 살아가는 약자로 그려내며 독특한 시각으로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 ‘채피’ 역시 단순한 인간 VS 로봇이 아닌 생명을 가진 로봇을 통해 인간의 본능을 들여다보고 있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길 전망이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엉성함, 개연성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제4의 시각으로 인류, 그리고 미래를 바라봤다는 점에선 SF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극장을 찾을 만하다.
한편 ‘디스트릭트 9’, ‘엘리시움’ 등을 연출했던 닐 블롬캠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채피’는 오는 12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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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