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인공적인 화학 조미료 없이도 맛있는 음식과 같다. 자신의 남편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는 진부한 설정은 없다. 대신 발차기로 상대방을 쓰러뜨렸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세컨드”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이야기, 연출, 연기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구멍이 없는 드라마로 호평을 받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혜자의 대사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피식 웃음을 유발한다.
지난 4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강순옥(김혜자 분) 가족들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이야기가 전개된 가운데, 순옥이 뼈에 사무치도록 억하심정을 갖고 있는 장모란(장미희 분)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순옥은 모란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상태. 재회 후 날라차기로 모란에게 일격을 가했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란에게 “당신은 죽으면 안 된다. 내가 당한 고통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가야 한다”라며 모진 말을 쏟아냈다. 거친 욕설까지 곁들였다. 여기까지가 순옥의 한풀이 1막이라면 은근히 사람 속을 긁는 독설이 남아 있다.

순옥은 자신의 음식을 그리워했던 모란에게 “우리 남편이 음식 많이 갖다줬지? 나한테는 직장에서 야식으로 먹는다고 했는데...”라고 이죽거렸다. 또한 사위 정구민(박혁권 분)에게 “자네 장인어른 세컨드”라고 모란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울분을 조금씩, 그러면서도 뒤끝 강한 듯 길게 뱉어냈다. 순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빈정거리거나 독설을 날리는 게 남편의 정신적인 외도가 안긴 충격에도 자식들을 건사한 순옥의 큰 버팀목이었다.
요리를 가르치며 모진 세상을 살다보니 웃으면서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강한 내공이 생겼고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모란에게 퍼붓고 있다. 그가 아무리 시한부 인생일지언정 말이다. 그렇다고 순옥이 자비가 없는 게 아니다. 모란에 대한 동정심이 옅게 깔려 있다는 것을 모란 역시 알고 있다. 모란을 향한 원망이 무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험한 협박과 담겨 있는 독설은 아니라 더 강렬하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비난을 배설하는 듯한’ 자극적인 공방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한 것.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두 사람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 숨어있는 뼈있는 말 한 마디는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이는 ‘메리 대구 공방전’,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 등을 집필하며 미사여구 없이도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인영 작가의 섬세한 접근이 안방극장에 통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쌓인 화가 많은 여자들의 진부한 좌충우돌기가 될 수 있는 통속적인 소재를 전형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자극적인 인공 요소를 치지 않아도 재밌는 이야기를 만든 것. 또한 순옥을 연기하는 김혜자의 말은 무심하게 하면서도 눈빛은 매섭지 않고 따뜻하게 표현하는 정밀한 연기가 한 몫을 했다.
현재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고 신선하게 덧칠하는 연출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순항 중이다. 이미 MBC ‘킬미힐미’가 선점하고 있는 수목드라마 시장이지만 일단 보면 재밌다는 호평 속에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순옥의 가족들의 험난한 인생사가 하나하나 공개되며 감정 이입이 할 등장인물이 많아 공감대가 높은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뜨거운 피를 가진 3대 여자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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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