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입니다. 수요는 적은데, 공급은 많은 시대에 다들 힘들어합니다. 프로야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수백명의 고교 및 대학 졸업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프로팀의 지명을 받을 수 있는 선수는 15%가 채 안 됩니다. 취업률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각박한 환경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명 자체가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명을 받은 15% 중에서도 절반은 1군 무대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프리에이전트(FA) 100억 원 시대를 앞두고 있는 프로야구지만 여전히 최저연봉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 더 답답해집니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감독 선생님, 코치 선생님들의 말만 잘 따르고 열심히 훈련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순진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바로 2군급 선수들, 그리고 1.5군급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이 가장 조명을 받는 시기가 바로 매년 1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열리는 각 구단 전지훈련입니다. 구단에서는 새 얼굴을 찾아야 하고, 이 선수들을 기량을 확인하기 위한 장으로 전지훈련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김없이, 올해도 많은 새로운 이름들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립니다.

구단을 취재할 때, 사실 1군에 자리 잡은 선수들은 이맘 때 할 이야기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1군에서 항상 보던 얼굴이라 친숙한 점은 있지만 풀어놓을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없는 까닭입니다. 늘 비슷한 질문, 그리고 늘 비슷한 대답이 이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신인급 선수들을 더 주목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하나하나에 새로움을 느낍니다. 절박함이 묻어나고, 열정이 활자에 아로 새겨집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뒤를 돌아서면,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에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SK는 올해 객관적 전력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코칭스태프에서도 이런 평가를 애써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권까지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경계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이 정도 전력이면 포스트시즌 진출은 해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구단 전반에 폭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스인 김광현 선수가 팀 잔류를 선택했고 정우람 선수의 제대, 그리고 몇몇 부상 선수들의 정상적인 복귀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김용희 감독의 부임 이후 팀 분위기도 좋아졌습니다. 하나로 뭉쳐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데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올해 SK는 주전급 선수들의 면면이 탄탄하고 베테랑 선수들이 주도하는 좋은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돌려 이야기하면, 젊은 선수들이 확 치고 올라설 수 있을 만한 여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선수들이 상층에 자리하고 있고 별다른 추락이 없는 이상 이 선수들에게 먼저 기회가 갈 것이 유력하니까요. 1군 엔트리가 제한되어 있기에 오키나와까지 갔더라도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2군으로 내려갈 선수들은 생깁니다. 대만에 간 2군 선수들은 1군 코칭스태프가 기량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턱은 더 높습니다.
선수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아른거리지만,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간 취재를 하면서 이른바 ‘캠프 유망주’가 어떤 시련을 겪는지도 잘 봐왔습니다. 아마도 SK의 개막 엔트리에는 항상 있었던 선수들이 대거 자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선수들도 이런 현실을 인정합니다. “1군 진입이 최대 목표”라는 앵무새와 같은 이야기에서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타석, 한 투구마다 절박함을 가지고 사활을 걸었습니다.
올해 들어 퓨처스팀(2군) 선수단이 있는 강화도에 가 봤습니다. 서해의 칼바람과 싸우며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헐떡거리는 신진급 선수들을 만났습니다. 고된 일정에 힘들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의지를 불태우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연봉 3000만 원이 안 되는 선수들이었지만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야구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야간훈련이 없는 날, 신진급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배트를 들고 숙소 근처 훈련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습니다. 코칭스태프는 개인 업무 중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선수들과 인터뷰를 할 때 “다음 인터뷰는 강화도가 아닌, 꼭 문학구장에서 하자”라는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SK는 장기적인 강팀의 초석을 닦을 수 있을 겁니다. 나에게는 당연한 출장이지만 누군가에는 정말 간절한 목표라는 것을 1군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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