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막연히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철저한 준비, 그리고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도전의식이 필요하다. 너무 냉정한 이야기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 남는 것이 낫다” (에이전트 B)
류현진(28, LA 다저스)의 성공 이후 메이저리그(MLB) 붐이 불고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실험해보고자 희망하는 선수들이 늘어난다. 실제 몇몇 선수들은 계약에 이르렀으며 몇몇 선수들은 진출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것이 실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MLB 진출의 전제조건은 준비, 겸손, 그리고 진짜 의지다.
▲ 과거 경력에 취하면 안 된다

국내 몇몇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도운 에이전트 A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준비를 손꼽았다. A는 “과거의 경력도 중요하지만 MLB 팀들이 바라보는 것은 단연 현재의 기량과 앞으로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는 B도 이런 인식에 공감한다. B는 “류현진의 성공 이후 한국 시장이 예전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쿠바 시장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들이대는 잣대도 당연히 냉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 최고의 경력이 MLB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금이 중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B는 “볼티모어는 윤석민의 영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윤석민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윤석민으로서는 이리 저리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MLB는 수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는 무대다”며 볼티모어의 결정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B는 “류현진은 정말 잘 풀린 케이스다. 따낸 계약이 커 기회를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한 준비로 자신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않았는가. 강정호도 지금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요소는 계약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좋은 계약을 따내며 MLB에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대박 계약은 힘들다는 것이다. A는 “내 고객은 물론 다른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수들의 눈이 높은 경우가 있었다. 물론 많은 돈을 받으면 선수도 좋고 수수료를 챙기는 나도 좋다. 선수의 자존심도 이해한다. 하지만 ‘누구만큼은 받아야 겠다’, ‘누구는 이 정도를 받았으니 나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서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실패하면 에이전트의 무능력이 된다”라고 꼬집었다. 한국무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MLB의 시선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존심은 챙겨야 하고, MLB 팀들이 제시하는 금액은 낮으니 이것저것 다른 부대조항에 눈을 돌린다는 것이 A의 설명이다. A는 “여러 차례 언론에서 지적됐지만 윤석민의 마이너리그 강등거부권은 계약 당시부터 에이전트계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떠올렸다. 겉포장에 너무 치중해 정작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B는 “강정호의 보장금액에도 인센티브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김광현도 샌디에이고가 보장금액을 최대한 줄이려 애썼다. 요새 MLB 팀들이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옵션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외형상 보이는 옵션 계약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 원한다면 포기하는 부분도 있어야
마지막으로는 진짜 의지다. B는 “아시아 쪽에 관심이 없는 팀도 있지만 호감을 보이는 팀도 많다. 대개 이들은 아시아 선수들이 성실하고 진중하다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라면서도 “금전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진짜 도전에 나서는 일본인 선수들과 우리 선수들이 조금은 비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고 털어놨다.
B는 “후지카와나 와다와 같이 일본에서 특급 칭호를 받았던 선수도 MLB에서는 피말리는 경쟁을 벌인다. 이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내 자리’가 있는 곳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볼 일”이라고 냉정한 어조를 이어갔다. A 역시 “돈도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하고, 기회도 최대한 많이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듯한 계약을 따낼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 마치 겉보기의 류현진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팀은 없다”라고 동조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몇몇 대학 선수들의 프로행 업무를 도왔다는 B는 “처음 마이너리그에 가면 5만 달러, 10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절박함을 가지고 뛰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짠해졌던 기억이 있다”라면서 “요즘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은가. 그저 막연히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정말 원한다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후회 없이 부딪혀 볼 필요도 있다. MLB 진출이 야구선수 자격 증명을 위한 수능이나 SAT도 아닌데, 그렇다면 한국에 남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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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데일(미 애리조나주)=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