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오늘도 '좋아요'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3.08 10: 58

* 스포일러 주의
[OSEN=이혜린의 무비라떼] "모든 걸 내려놨어요."
크고 작은 풍파를 겪은 연예인들을 만나다보면, 매우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가는 인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겠다는 이 선언은, 그러나 그저 선언일 뿐 결코 현실화 될 수 없다. 이 말을 내뱉고 인터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차트 성적과 라이벌과 네티즌에 '완전' 민감한 모습을 들키곤 한다.

영화 '버드맨'의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도 그런 연예인 중 하나다. 소싯적 '버드맨'이라는 히어로물 하나를 히트시키곤 대중의 기억 저멀리 사라져버린 그는 활동 무대를 연극으로 옮겨 재기를 꿈꾼다. 수십년 전 발표된 레이먼드 커버의 명작을 원작으로, 대본도 쓰고 연기도 하는 그는 고상하게 '실력'으로 검증받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하지만 다시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수시로 꿈틀거린다. 그리고 이는 결코 고상할 수 없다. 블럭버스터가 점령한 '영화판'에 염증을 토로할 땐 언제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 중인 '아이언맨' 로버트다우니주니어를 보는 심경은 뒤틀린다. 실력 좋은 후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사비를 털어서라도 데려오고 싶어했으면서 막상 자기보다 더 크게 기사가 나자 주먹이 먼저 나간다.
연극 흥행을 좌지우지한다는 뉴욕타임즈 기자가 못생겼다고 투덜대가다도 슬쩍 다가가 술을 한잔 사려하고, 환심을 사는데 실패하자 "요즘 누가 뉴욕타임즈를 보냐"고 궁시렁대는 그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전성기를 지나버린, 다시는 전성기가 오지 않으리라 불안한 사람에게 희망의 징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타임스퀘어를 팬티 바람으로 뛰어 다시 '존재감'을 갖게 됐고, 연극 1막이 끝나고 연기력을 칭찬받은 것도 모자라 실제 자살 시도로 최고 '핫'한 이슈로 떠오른 그는 다시 '날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 관심 또한 조만간 꺼져버릴 것을 안 그가 이슈의 정점에서 떠나려한 것일지도 모른다. 추락은 두번 겪을만한 일이 아니다.
이 영화를 연예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홍보담당자들과 봤다. 영화가 끝난 '불금'의 늦은 밤 시간에도 이들의 전화는 수시로 울려댔다.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포털 메인에 뜰까? 내일 보도자료는 어떤 게 나가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스타들의 다리는 백조의 그것처럼 분주하다.
기자는 그들의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돼지 정액'만큼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 하루에도 수천개의 기사가 만들어지는 시대, 관건은 누가 먼저 '돼지 정액'을 찾느냐다. 그게 영 자존심 상하면 연극 도전이 사람들 시선을 의식한 게 아니냐고 비아냥대던 기자처럼, 배우를 '빡치게'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매체와 다른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당연히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과거의 인기에 도취돼 현재의 자신을 깎아먹는 또 다른 자아 버드맨의 목소리는 시종 톰슨을 괴롭힌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스타 행세를 하고, 히어로들이 날아다녀야 영화를 보는 '여드름 난 찌질이'들을 비웃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별 거 아닌 것들이 너무 부럽고, 히어로물에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되니, 톰슨은 진짜 자아가 분열될 지경이다. 이 날카로운 풍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괴물이 불을 뿜어내고 거리를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등장하자 '신난다'고 느끼는 관객 역시 자아는 분열된다. 우리는 모두 '여드름 난 찌질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버드맨은 우리들 안에도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페이스북으로, 트위터로,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인기를 검증받고 있는 시대, 적나라하게 찍히는 팔로워 수와 '좋아요' 수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가치를 수치화한 것만 같다. 수치가 떨어지면 당연히 자존감도 떨어진다. 너무나 슬픈 건, 인기도, 자존감도 한번 떨어지면 다시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버드맨은 속삭인다.
"지금의 너는 사랑받을 수 없어. 좀, 다른 사람이 돼봐."
rinny@osen.co.kr
'버드맨' 스틸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