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및 꿈을 잃은 젊은이들의 이야기인가 했더니, 결국엔 출생의 비밀이 주를 이뤘다. 초반부터 ‘미생’의 지상파 버전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던 이 드라마는 결국 미리 준비됐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농담이 진담이 된 상황이다.
지난 8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파랑새의 집'(극본 최현경 연출 지병현)에서는 자신의 아버지 상준이 태수(천호진 분) 회사의 전신이랄 수 있는 회사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지완(이준혁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더불어 지완의 동생 은수(채수빈 분)가 지닌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 정애(김혜선 분)가 등장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이날 방송에는 새로운 인물 정애가 등장해 태수와 선희(최명길 분)를 놀라게 했다. 선희는 길에서 정애를 본 후 사색이 됐고, 태수는 정애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에게 돈을 건넸다. 돈을 손에 쥐며 “어차피 줄 거 기분 좋게 주지, 나 마음 안 상하게. 나 마음 상하게 해서 오빠가 좋을 거 뭐 있느냐”고 은근슬쩍 협박을 하는 정애의 말 속에는 정애와 태수가 공유하는 비밀이 있음을 암시했다.
이어 정애는 선희의 일터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은수를 본 그는 선희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 후 “조금 전에 언니가 목도리 둘러준 애 말이야. 그 애지? 맞지 은수”라며 알은체를 했다. 정애의 말에 선희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같은 시각 은수는 지완(이준혁 분)의 심부름으로 그의 회사에 찾아갔다가 회장인 태수를 마주쳤다. 태수는 자신에게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하는 은수가 지완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아가씨가 그 은수인가?"라고 물으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사실 은수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은 예상이 가능하다. 일단 그는 태수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은수를 유심히 보는 눈빛이나, 자신의 가족들이 태수와 얽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시 은수의 유전자 검사를 꺼리는 선희의 모습, 정애에게 약점이 잡힌 듯 돈을 건네는 태수의 모습 등이 이를 예상하게 했다.
통속극 예상 경로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파랑새의 집’을 보며 ‘꼭 이래야만 하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기승전 ‘출생의 비밀’, ‘복수’로 달려가는 드라마의 흐름은 그간 이 작품이 보여주려 애써 노력했던, 취업준비생이자 사회초년생 지완의 공감 가는 현실에 찬물을 끼얹었다.
‘파랑새의 집’은 여러모로 ‘미생’과 비슷한 시작점을 공유한다. 지방대 출신에 학벌로 무시를 당하다 가까스로 입사한 지완은 마치 낙하산으로 입사한 장그래를 보는 것 같다. 조용한 성격에 남다른 내공으로 주목을 받는 성격 역시 비슷하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전개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미생’이었다면 그런 장그래의 고달픈 직장 생활과 적응 과정을 조명하는 데 비중을 뒀겠지만, 지상파 통속극은 전혀 다른 노선을 택했다. 지완의 신분이 사실은 오너의 아들이었음을 먼저 밝혀 그의 성공이 필연적인 일임을 강조했다. 또 현재의 회장인 태수와 죽은 지완의 아버지 상준 사이에 불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며 주인공에게 복수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지상파표 ‘미생’이 이처럼 익숙한 길을 걷는 것은 분명, 다양한 세대 시청자들을 고려한 일종의 타협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타협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미생’도, 통속극을 뛰어넘는 화끈한 막장극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미생’과 막장극 사이 그 어딘가를 부류하고 있는 ‘파랑새의 집’이 과연 제대로된 노선을 잘 찾아 전작의 호평을 이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파랑새의 집'은 취업난에 시달리며 꿈을 포기하고 현실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그들 부모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매주 토, 일요일 오후 7시 55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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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의 집'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