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뤘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다".
한화가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지난 7일 대전 LG전. 남들에게는 평범한 시범경기일지 모르지만 누구보다 감격적인 날을 보낸 선수가 있었다. 등번호 118번, 한화 내야수 정유철(27)이 그 주인공이었다.
▲ 대체 정유철이 누구야?

118번이라는 숫자에서 나타나듯 그의 신분은 육성선수다. 하지만 시범경기 첫 날 가장 주목받는 팀 한화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7번타자 2루수로 선발출장한 정유철은 2회 무사 1루에서 헨리 소사를 상대로 우중간 가르는 1타점 3루타로 프로 공식경기 첫 타석을 장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기대한 순간이었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다. 만원관중 앞에서 뛰는 게 처음이었는데 내겐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튿날에도 8번타자 2루수로 선발출장한 정유철은 안정된 수비를 뽐냈다. 과연 그가 어디서 나타난 어떤 선수인지 궁금증이 증폭했다.
선린인터넷고-계명대 출신의 정유철은 우여곡절이 많은 야구 인생을 걸었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해 현역으로 군입대했다. 잠시만 쉬자는 생각으로 운전병으로 입대했다"며 "하지만 야구를 하고 싶었고, 몰래 방망이를 갖고 들어가 연습을 했다. 고참이 되고 나서는 후임병을 데리고 캐치볼도 했다"고 힘들었지만 정말 간절했던 시간을 돌아봤다.
▲ 원더스·김성근 감독과 인연
그는 군복무 중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 소식을 접했다. 정유철은 "넥센 내야수 김정록이 고교 후배인데 원더스에 갔다. 나도 후배처럼 원더스에서 다시 야구를 하고 싶었고, 군복무를 마친 뒤 8개월을 혼자 준비해서 트라이아웃을 봤다"고 말했다. 그렇게 2014년 1년을 원더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원더스는 정유철이 들어온 지 1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았다. 오갈 데 없는 신세로 기약 없이 훈련을 하던 그에게 한화 구단의 연락이 왔다. 원더스에서 인연을 맺은 김성근 감독이 입단 테스트로 제시한 것이다. 찬바람 부는 11월 초겨울, 그는 고양에서 서산으로 내려와 테스트를 치렀다.
합격 통보를 받고 한화에 육성선수로 입단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유철은 "감독님과 따로 이야기한 것은 없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초 2군 서산 캠프에 있던 그였지만, 주전 2루수 정근우가 연습경기 중 불의의 턱뼈 골절로 이탈하자 1군 캠프 호출을 받았다. 대체 2루수로 부른 것이다.
▲ 꿈과 기적은 이제부터 시작
뒤늦게 1군 캠프에 합류했지만 정유철은 2루수로 투입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캠프 마지막 연습경기였던 2일 넥센전에서 9회 끝내기 안타를 작렬시키며 주목받았다. 여세를 몰아 시범경기에서도 연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빨라서 수비가 좋다"고 짧게 말했지만 뿌듯함이 담긴 칭찬이었다.
정유철은 "한화에 와서 정근우·권용관 선배님께 보고 배운 게 크다. 또래 선수들도 나보다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따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수비에서 안정성이 부족해 더 보완하고 싶다. 롤 모델인 권용관·정근우 선배님처럼 안전하게 수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좌우 타석을 오가는 스위치히터이기도 한 그는 "왼손 타석에서는 이용규 선배님처럼 쳐보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작은 체구에 야무진 스윙이 닮았다.
시련의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힘을 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의 꿈과 기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힘들 때 가족들이 가장 힘이 됐다.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는데 정신적으로 가족과 친구들이 많이 잡아줬다"는 것이 정유철의 말이다.
아직 육성선수 신분의 그는 5월1일부터 1군 경기에서 출장이 가능하다. 더 큰 꿈을 향한 정유철의 힘찬 도전이 또 한 편의 원더스 기적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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