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스피드업 적응기였다.
KBO 리그가 올해부터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한 스피드업 규정이 시범경기에서부터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타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타석에서 벗어날 때 주어지는 '타석 이탈 스트라이크' 선언으로,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고도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는 낯선 풍경이 시범경기 개막 연전을 장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선수가 바로 한화 외야수 김경언(33)이었다. 특히 시범경기 개막일이었던 지난 7일 대전 LG전에서 두 번이나 두 발이 타석에서 모두 떨어지는 바람에 타석 이탈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았다. 스피드업 규정 위반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선수로 떠올랐다.

이날 3회 무사 1루 볼카운트 2B2S에서 4구째 스트라이크 이후 무의식 중 타석을 벗어나 그대로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처리됐고, 6회 1사 1·3루에도 초구 스트라이크를 보낸 다음 무심결에 타석을 벗어난 것이 또 타석 이탈 스트라이크가 돼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고 말았다.
이어 3구째 낮은 공을 보며 몸이 따라가는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바깥으로 쏠리는 바람에 타석을 벗어날 뻔했다.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왼발이 타석 밖으로 빠진 가운데 나머지 오른발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다리 벌리기 동작으로 팬들에게 뜻하지 않은 '몸 개그' 웃음을 안겼다. 물론 본인은 아찔했다.
김경언은 "원래 나는 타격 스타일이 몸이 앞으로 나가면서 공을 고르고 친다. 공에 몸이 나가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였는데 스트라이크가 돼 당황스러웠다"며 "다음 타석부터 타석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것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투수와 승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피드업 규정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20년 가까이 몸에 배인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김경언은 "처음 이 룰을 들었을 때 '타격 스타일 때문에 조금 어렵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은 타격 스타일은 삼진을 많이 먹을 것 같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런데 삼진을 당한 것만큼 참기 어려운 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었다. 김경언은 "스트라이크를 받은 건 괜찮은데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쪽팔렸다"며 웃은 뒤 "동료들도 처음에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무슨 상황인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내가 무안해서 먼저 말을 해줬다"고 말했다. 절친한 동료 정근우는 "처음에는 '왜 나와? 왜 나오지?' 싶었다. 경언이처럼 폼이 앞으로 나가서 치는 선수들은 불리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시범경기 첫 날 김경언은 3타수 무안타로 타격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튿날에는 어느 정도 적응됐는지 타석 이탈 없이 2타수 1안타 2볼넷으로 활약했다. 몇 차례 타석에서 벗어날 뻔했지만 첫 날의 트라우마를 잊지 않았다.
김경언은 "오키나와 캠프에서 운동을 많이 쉬어 경기를 별로 못 뛰었다. 스피드업을 생각도 못했고, 감각적으로 적응이 안 된 부분도 있었다"며 "만약 이대로 룰이 계속 된다면 그에 맞게 연습을 더하는 수밖에 없다. 배터박스를 넓게 다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김경언의 좌충우돌 스피드업 규정 적응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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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