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슈팀] KBO 시범경기가 열렸다. 경기 시간 단축, 이른바 '스피드업'을 위한 제도 개선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범경기에서 그 효과와 부작용을 모두 확인한 모습이다. 이미 스피드업이 전 세계 야구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제도 도입은 불가피하다. 지금은 부작용을 줄여가며 연착륙을 이뤄가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한화와 LG와의 시범경기 개막전이 열린 지난 7일 대전구장은 '스피드업' 규정이 단연 화제를 모았다. 김경언(한화)과 이진영(LG)이 새로운 룰에 제대로 당했다. 올해 KBO(한국야구위원회)가 개정한 스피드업 룰을 어겼기 때문이다. KBO는 올해부터 '투수교체는 2분30초 이내 완료, 새로운 타자는 10초 내 등장, 타자의 두 발이 모두 타석에서 벗어나면 스트라이크를 선언, 사사구로 출루할 때는 1루까지 뛰어 가야한다' 등 경기 촉진을 위해 제도를 손질했다.
김경언과 이진영이 어긴 대목은 '타자의 두 발이 모두 타석에 있어야 한다'라는 룰이다. 두 선수는 2S 이후 무의식적으로 타석을 벗어났고 이를 발견한 주심으로부터 스트라이크를 선언받았다. '자동 삼진'이었다. 이 장면을 본 현장과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들이 적응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가혹하다'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몇몇 감독들은 이 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며 재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KBO가 이 룰을 도입한 것은 최근 경기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KBO 리그의 평균 경기 시간은 무려 3시간 27분에 달했다. 4시간 이상이 걸린 경기도 전체 13%에 이르렀다. 인간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은 대개 100분 정도다. 초·중·고·대학의 수업 시간이 다른 것은 연령별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경기 시간이 길어져도 상관없다'라는 골수팬들도 있지만 1년에 2~3차례 경기장을 찾는 절대 다수의 팬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군더더기 없이 경기가 박진감 있게 진행되길 원한다. 오죽했으면 메이저리그(MLB)는 "경기 시간이 3시간을 넘으면 리그가 죽는다"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보다 평균 경기 시간이 10분 이상 짧았던 일본도 스피드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불필요한 요소에 경기가 늘어지면 박진감이 사라지고, 결국 흥행에 밀접한 영향을 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뜨거운 감자'가 된 타석 관련 룰에 대한 현장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 취지 자체에는 공감한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포수는 "나도 타석에 들어서지만 때로는 '뭐하나' 싶을 정도로 타석을 오래 벗어나 있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불필요한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방침 자체에 반대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했다. 김경문 감독도 "경기 시간 단축은 선수와 팬들에게 모두 좋다"라고 취지에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강제적으로 선언하는 현재의 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기 외적인 요소가 경기 내용을 바꿔놓을 수 있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KBO는 종전에도 경고 후 스트라이크를 선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강제적이지 못해 효과가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 룰이 야구 자체에 개입할 여지를 우려한다.
그러나 제도 자체가 모두 사라질 가능성은 적다는 게 야구계의 관측이다. 스피드업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에 대한 정당성도 있다. 현장에서 주로 지적하는 것도 페널티에 대한 문제이지 룰 자체가 아니다. 때문에 룰 개정과 동시에 선수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몇몇 선수들은 "해오던 루틴이다. 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다"라며 항변을 하고 있지만 적응에 대한 노력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투수들도 처음에 12초룰이 도입됐을 때 애를 먹는 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가 거의 없다. 타자들도 시범경기 말미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낙관적인 견해를 내놨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현행 룰에서도 예외 규정이 있다. 지금도 '타격 행위를 한 후 중심을 잃었을 때, 몸쪽 공을 피하기 위해 타석을 이탈했을 때' 등은 예외 사항으로 허용이 된다. 주심의 재량도 있다. 한 타자는 "스윙을 하지 않더라도 잔뜩 힘을 준 상황이라면 나도 모르게 타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심판들도 현역 생활을 하신 분들이 많지 않은가. 이렇게 고의성이 없을 때는 바로 타석에 복귀할 경우 넘어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까지 받아줄 수 있느냐도 논의되어야 한다.
사실 이 룰의 도입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쪽은 심판들이다. 가뜩이나 경기를 관장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제는 선수들의 발까지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방심이 상황을 놓칠 수 있다. 이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8일 대전 경기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다. 룰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에 대해 현장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도 정규시즌에 들어가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정규시즌부터는 하나의 원칙을 칼 같이 적용해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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