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당황해서 더듬더듬, 동공은 심하게 흔들린다. 배우 장현성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보여준 이 정밀한 연기는 체면을 지키고 싶어도 쉽지 않은 수많은 을(乙)들의 비애를 담는 동시에 씁쓸한 세태 풍자가 됐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6회는 서봄(고아성 분)의 아버지인 서형식(장현성 분)이 사돈 한정호(유준상 분)의 위세에 눌려 비참한 일을 당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장현성이 연기하는 형식은 지극히도 속세적인 인물. 딸의 혼전 임신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사돈 정호의 재력과 권력에 자신과 가족이 무력화되는 것을 수긍하는 속물이다. 속물이라고 나쁜 의미는 아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속물 근성을 풍자하면서도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편타당하게 접근하고 있다.

형식은 딸의 행복보다는 거액의 합의금에 흔들리지만 애써 아닌 척 숨기려고 하는 자존심이 세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은 보통의 인물이다. 그래서 형식은 을의 비애를 보여주는 동시에 을 역시 재력에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에 대해 타개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풍자의 대상이 된다.
6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호와의 정식 상견례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집안의 위용에 주눅 들고 그동안의 문전박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토로하지 못했다. 실컷 손자의 탯줄 도장을 만드는 정성을 보였으면서도 마음껏 사랑한다는 표현도 못할 정도로 기가 죽었고, 정호가 부리는 비서의 눈치도 봤다.
어색하게 늘어진 팔, 축 처진 어깨,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는 눈빛은 사돈 관계의 기본적인 어려움을 넘어선 재력 차이로 인해 이미 여러 수 접고 들어간 형식의 슬픈 처지가 농축돼 있었다. 정호의 말 한 마디에 말끝을 흐리기 일쑤, 말만 부드럽지 협박에 가까운 귀농 제안에도 크게 항변하지 못하는 형식은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유발하는 동시에 씁쓸함을 안겼다.
비굴한 표정을 지은 것도, 아첨에 가까운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을의 비애는 장현성의 몸 곳곳에서 포착됐다. 자신감 넘치는 정호 역의 유준상의 걸음걸이와 달리 흐느적거리는 모습,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드러난 극도의 긴장감이 장현성의 움직임에서 다 느껴졌다. 대사가 많아 안방극장에 친절하게 설명이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제작진이 깔아놓은 형식이라는 인물의 간사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중성을 장현성이 철두철미하게 연기했다.
사실 장현성이 연기하는 형식은 압도적인 몰입도를 뽐낼 수 있는 웅장한 힘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 그럼에도 자신의 연기를 해야 드라마가 재밌고 캐릭터가 빛나는 역할이다. 탄탄하게 연기 구력을 쌓은 장현성의 자연스러운 캐릭터 해석이 ‘풍문으로 들었소’ 시청의 또 다른 재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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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