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드라마로 안방극장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다. 분명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누구 하나 격하게 싸우는 이 없고, 누구 하나 어이 없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 눈이 휘둥그렇게 될 정도로 기가 찬 이야기도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한 장면 한 장면 모두 흥미롭다. 이런 드라마가 흥행을 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응원의 목소리가 거센 것도 당연하다.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강순옥(김혜자 분)을 필두로 3대 여자들이 꿈과 사랑을 이루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 드라마. 따뜻함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은 이야기가 모두 얽히고설켜 있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튀는 이야기도 아닌데 흡인력이 높은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꾼인 김인영 작가, 전작 ‘내딸 서영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유현기 PD가 빼어난 호흡을 자랑한다.
지난 12일 방송된 6회만 봐도 그렇다. 순옥과 장모란(장미희 분)의 묘한 관계, 죽은 줄 알았던 이철희(이순재 분)가 사실은 살아 있고 순옥 가족 앞에 나타날 일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장치들, 김현숙(채시라 분)과 교사 나현애(서이숙 분)의 2대에 걸쳐 얽혀있는 악연, 현숙의 딸 장마리(이하나 분)의 두 남자 이루오(송재림 분)와 이두진(김지석 분)의 관계 등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현숙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의 순애보, 현숙과 현애의 악연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체육 교사 한충길(최정우 분), 순옥과 가족 같은 사이인데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제자 박은실(이미도 분) 등 주연부터 조연까지 등장 인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차근차근 개연성 있게 다뤄지고 있다. 남녀 로맨스나 거대한 사건에 치중하는 보통의 평일 드라마와 달리 인물들간의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이야기가 모여 재미를 선사하는 것.
그렇다고 산재한 갈등 요소들을 마구잡이로 터뜨린다든가, 어디 하나 제정상인 인물이 없는 막장 전개를 펼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물들이 수긍 가능하게 혹은 조금은 불쌍한 구석이 있게 다루며 시청자들과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급한 성미 드러내지 않고 진득하게 이야기를 끌고가는 작가의 뚝심이 고마울 뿐이다.
이는 보통 주말에 방송되는 가족 드라마 형태다. 이 드라마는 경쟁이 심한 평일 드라마인데도 이 같은 따뜻하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는 구성을 택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갈등을 배제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하나로 승부해서 안방극장 공략에 성공한 셈이다. 밋밋하지 않고 자꾸 보게 만드는 재미있는 전개는 이 드라마의 매력이고 언제나 예상 못한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니 배우들의 연기 역시 더욱 부각된다. 김혜자·채시라·도지원·이하나 등 이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여자들과 얽힌 남자들이자 멋들어진 매력을 장착한 박혁권·송재림·김지석의 안정적인 지지가 보다가 피식 피식 웃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는 자극적이지 않으면 시청률이 낮곤 한데,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시청률과 작품성을 모두 챙겼다. 그래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지금처럼 종영할 때까지 순항하길, 그래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막장 드라마'가 시들시들해지는 날이 오기를, 조금은 불가능한 희망에 가까운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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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