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가만히 있으라’ 이문식,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OSEN 권지영 기자
발행 2015.03.14 06: 30

착하게,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만 남는 건 결국 분노였다.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온다거나, 모든 일이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사자성어 인과응보나 사필귀정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 2015 시즌1 첫 번째 작품 ‘가만히 있으라’에서는 묵묵히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강력계 형사 찬수(이문식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찬수는 믿고 따르던 선배 형사가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상한 몸으로 퇴직하자 분노했지만, 부조리에 대항하려는 후배에 “가만히 좀 있어. 가만히. 너랑 나랑 나대다가 잘리면 우리는 누가 지켜주냐”고 말하며 조직의 흐름에 따르려 했다.
이에 찬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조직폭력배 불곰파 소탕 작전에 나섰다. 찬수는 불곰파의 일원으로 자신이 검거했고, 이후 새삶을 살게 하려 후원하고 있는 성인 고등학생 준식(이주승 분)의 도움을 받아 이 작전을 진행했는데, 불곰파가 준식의 배신을 알아채고 폭력을 행사하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찬수는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준식이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모습을 뒤로 하고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준식은 홀로 불에 타 죽을 위기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는 등 어른들을 믿었던 만큼 커다란 배신감에 휩싸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각, 찬수의 딸 다미(채빈 분)는 친구였던 모범생 민혁(박건태 분)과 몸싸움을 하다가 살해되고 말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남을 먼저 돕고, 부조리한 일에 앞장서던 밝고 착했던 딸 다미는 찬수를 불곰파 함정에 몰아넣은 경찰서장 영한(조덕현)의 아들 민혁의 손에 죽음을 맞은 것. 민혁은 자신이 좋아하는 다미가 준식에게 가려고 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했고, 다미를 죽게 만들었다. 영한은 아들을 위해 현장을 조작했지만 민혁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곧 밝혀졌다. 민혁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을 피하며 “아빠가 괜찮다고 했다”고 뒷걸음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던 찬수는 지켜주려 했던 아이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가만히 있는 사이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손쓸 틈 없이 사라지는 아이들. 그 앞에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찬수의 모습은 먹먹하고 답답한 기분을 선사했다. 찬수의 오열과 뒤늦은 후회는 어떤 것도 돌려놓지 못했고, 이들의 희생을 밟고 올라선 경찰 고위층의 미소가 겹쳐지며 섬뜩함을 안겼다.
이는 지난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랐던, 착한 어린 승객들의 안타까운 사망 사고로 온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던 것. 가만히 있어 모든 것을 잃은 찬수의 절망과 분노는 과연 누구를,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의 가슴을 울리는 오열이 생각할거리를 안겼다.
jykwon@osen.co.kr
‘가만히 있으라’ 방송화면 캡처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