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 ‘몽타주’ 그리고 이번 ‘살인의뢰’까지 하면 벌써 세 번째 형사 역할이다. 형사 연기를 세 번이나 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살인의 추억’으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국민 형사’라는 수식어를 얻은 배우에겐 큰 도전일수도 있다. “또 형사야?”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
그럼에도 배우 김상경은 도전했다. 그가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살인의뢰’의 형사는 앞선 두 번의 형사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앞선 두 번의 형사가 범인 쫓기에만 몰두했다면 이번 ‘살인의뢰’의 형사는 범인을 쫓는 것은 물론, 범인에게 여동생이 납치되는 피해자의 심경까지 느껴야 했다.
덕분에 김상경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기분을 느껴봤다고 했다. 형사라는 직업의 덕목 중 하나인 냉철함은 내려놓고,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돼 감정을 폭발시켰다. 눈물도 흘렸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도 목격했다. 지금까지의 형사와는 다른 경험이었다.

“형사 역할은 이번이 3번째인데 전혀 다른 형사예요. ‘살인의 추억’에서 저는 피해자 가족이 아니라 그저 수사하는 형사일 뿐이었죠. ‘몽타주’도 3자의 일을 열심히 수사하는 형사였어요. 다만 ‘몽타주’ 때는 엄정화 캐릭터에 제가 감정이입이 돼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때문에 감독님과 형사의 냉철함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형사이면서 동시에 피해자 가족이죠. 납치돼 있는 동생의 말을 듣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어요. 몸이 부들부들 떨렸죠. 제 손이 그렇게 떨리는 줄 몰랐어요. 감독님께서 커트하고 촬영이 끝났는데도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더라고요. 눈물이 계속 나고요. 머릿속으로는 다음 장면을 찍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눈물이 계속 났죠.”

피해자가 된 형사 연기를 위해 김상경은 체중 감량에도 나섰다. 10일 만에 10kg을 감량했다며 “진짜 이렇다 죽는구나 싶었어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 김상경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따라하시면 안돼요”라는 말로 기자를 향해 강한(?) 경고를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10일 동안 10kg 정도 뺐어요. 원래 일주일 이였는데 도저히 일주일 동안 10kg 감량은 자신이 없어서 10일로 협상했죠(웃음). 3년 전후의 편차가 중요하니까 일단 찌우자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집에 가서 막걸리 두통에 볶음밥 시켜놓고 먹고 자고 그렇게 지냈죠. 먹는 게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자는데 속이 거북해서 자꾸 깨고 불쾌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7kg을 찌우고 나니까 7kg이 금방 빠지더라고요. 5일간 그 정도를 빼고 나머지 3kg는 원래 내 몸무게에서 빼야 되는데 그게 힘들더라고요. 위가 안 좋아지고 폭식했다가 안 먹으니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요. 37살까지는 몸무게 조절이 잘됐는데 이제 힘들다는 느낌이 오던데요(웃음). 그 이후로 드라마 찍을 때 몸이 힘들어서 보약 먹고 그랬죠. 난생 처음 보약을 먹은 것 같아요.”
고생 끝에 만들어낸 형사, 태수 연기를 하며 ‘살인의 추억’ 때 잡지 못했던 범인의 실체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리던 김상경은 “당분간 형사 연긴 그만 해야죠”라며 돌발 선언을 했다. 단, ‘투캅스’ 같은 코믹한 형사는 제외란다.
“당분간 형사는 그만 하는 걸로(웃음). 오히려 연쇄 살인마쪽으로 갈지도 몰라요(웃음). 제가 귀신 영화를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에 몰입한 뒤 잠을 자고 그러면 막 헛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귀신 영화 그 바로 옆에 형사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만약에 하더라도 웃긴 형사 아니고서야 형사 연기를 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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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