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로 돌아왔다. 시차는 있지만 2014년이 썩 좋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존심 회복’에 대한 전제는 같다. 임창용(39, 삼성)과 윤석민(29, KIA)이 나란히 시범경기 첫 등판을 가지며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15일 KBO 리그 시범경기에서는 두 선수의 첫 등판이 팬들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광주에서는 윤석민이 떴다. KIA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은 1이닝 동안 탈삼진 2개를 솎아내는 등 퍼펙트 피칭을 펼치며 신고식을 마쳤다. 포항에서는 임창용이 시범경기 첫 등판을 가졌다. 박진만에게 2루타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나머지 세 베테랑 타자(나주환 조동화 김강민)에게는 1루를 허용하지 않고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시범경기 등판이 늦었다.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메이저리그(MLB) 도전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윤석민은 국내 복귀를 결정한 지 얼마 안 됐다. 시범경기 등판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윤석민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임창용은 동료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탄 후에도 몇몇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지인 오키나와에 남았다. 따뜻한 곳에서 좀 더 몸을 끌어올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날 첫 출격을 가졌다.

두 선수는 KBO 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투수들이다. 임창용은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3년 연속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도합 44승을 거뒀다. 그런 임창용을 보며 자란 윤석민은 2011년 리그를 평정했다. 17승과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최고 대열에 우뚝 섰다. 그런 자신감으로 해외를 꿈꿨다는 점 또한 같다. 길은 달랐어도 미국, 메이저리그가 지향점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팔꿈치 수술을 마친 임창용은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MLB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시카고 컵스의 계획에 포함되지 못했다. 지난해 한국무대로 돌아와 31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블론세이브가 적지 않았고 평균자책점은 5.84까지 치솟았다. 윤석민은 결국 마이너리그에서만 한 시즌을 뛰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결국 두 선수는 올해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또 다른 공통점으로 묶인 셈이다.
의지는 남다르다. 임창용은 지난 2월 OSEN과의 인터뷰에서 “복귀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지만 개인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마무리 투수로서 갖춰야 할 부분에서 많이 미흡했다”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윤석민은 “개인 성적보다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라며 자신과 팀의 자존심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리고 그 각오만큼이나 단단한 출발을 선보였다.
윤석민은 기대 이상이었다. 6개월 만의 실전등판이었음에도 최고 구속이 146㎞까지 나왔다. 130㎞ 중·후반에 이르는 예리한 슬라이더는 여전했다. 직구·슬라이더 외에도 체인지업, 커브 등을 다양하게 시험하며 예열을 마쳤다. 임창용은 여전했다. 최고 149㎞의 빠른공은 특유의 움직임으로 예리하게 홈플레이트를 파고들었다. 임창용의 힘 있는 공에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가 밀렸다. 두 선수 모두 합격점이었다. 두 선수의 비상을 예감할 수 있는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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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윤석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