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KBO는 경기촉진위원회 회의를 열고 경기 시간 단축 방안들에 대해 뜻을 나눴다. 가장 큰 변화는 시범경기 내내 논란이 됐던 ‘타석 이탈 규정’을 수정한 것이었다.
변경 이전에는 타자의 양 발이 타석에서 떠나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경우에 따라 삼진이 선언될 수도 있었고, 시범경기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16일 회의 결과에 따라 스트라이크 대신 제재금 20만원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뀐 규정은 17일 시범경기부터 적용된다.
타자들에게 과한 압박감을 준다는 지적도 있지만, 경기 시간을 짧게 만들려는 의도에는 부합한다. 지난해 리그 타율 2할8푼9리, 평균자책점 5.21은 모두 역대 가장 높은 수치였다. 타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스트라이크존 확대와 더불어 리그 평균자책점 하락, 경기 시간 단축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타자의 발이 타석에서 벗어나는 만큼의 시간만 아끼자는 것이 아니라, 넓게 보면 투수전을 만들어 경기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지난 시즌 경기 시간이 늘어난 것은 타고투저 흐름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공 하나에 1초씩을 줄여도 하나를 더 던지면 벌어놓은 시간보다 더 써야한다. 그만큼 투수들이 좋은 제구력을 갖춰 최대한 적은 투구 수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 스피드업의 근본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모든 투수들이 그런 수준에 도달하기는 힘들기에 규정을 통해 경기 시간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현장에서도 대부분의 감독들이 찬성한 사안이다. 실제로 한국 심판들의 존은 일본, 미국에 비해 좁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 타자들은 일본 스프링캠프에서 평소 볼로 봤던 볼에 루킹 삼진을 당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갑자기 존을 심하게 넓히는 것은 무리다. 확대 구역을 높은 코스 공 반 개 정도로 설정한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타자들에게도 바뀐 존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고, 실효가 적으면 그때 조금 더 넓혀도 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들은 있다. 야구라는 경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을 지워내는 결정에는 현장은 물론 팬들도 반발할 수 있다. 지금은 시정된 타석 이탈에 관한 규정이 바로그것이다. 빠르게 의견을 수용한 부분은 좋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재미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경기 시간 단축보다 중요하다. 팬들도 아직은 연장전 대신 승부치기를 하거나 ‘7이닝 야구’와 같은 극단적인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
KBO는 올해 시범경기 34경기를 치른 15일까지 평균 경기 시간이 2시간 46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분 단축됐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뀐 스피드업 규정 때문인지, 커진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한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경기가 짧아진다는 것은 팬들이 지루해질 여지를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경기 시간은 짧으면 좋다. 하지만 야구 경기 본연의 재미를 앗아가는 요소를 억지로 끼워넣어 경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간 단축은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경기’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웰메이드 영화는 3시간이 흘러도 때론 90분짜리 영화보다 박진감 넘치고 짧게 느껴진다. 야구도 이와 같다. 현장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스피드업 규정은 급진적이지 않게 서서히, 하지만 영원히 조금씩은 손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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